[만화]만화가 허영만 "각시탈이 벌써 서른살 됐네요"

  • 입력 2004년 1월 29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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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낙명’(隨緣樂命).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 인근 오피스텔에 있는 만화가 허영만씨의 화실을 찾았을 때, 그의 책상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인연에 따라 오는 운명을 즐겁게 맞자’는 뜻. 운동복 차림으로 작업을 하던 그는 이 말 처럼 해맑은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허씨는 올해 만화가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1974년 소년한국일보 신인만화 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돼 데뷔한 뒤 75년 ‘각시탈’을 시작으로 ‘무당거미’ ‘카멜레온의 시’ ‘오 한강’ ‘비트’ ‘망치’ ‘짜장면’ ‘타짜’ 등 히트작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최근에는 동아일보에 음식만화 ‘식객’을 일일 연재하며 만화 장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식객’은 2002년 9월초부터 게재되고 있으며 이를 묶은 단행본이 최근 5권까지 나왔다.

만화 인생 30주년. 이를 축하하듯 그는 최근 경사를 맞았다. 그의 역작 ‘식객’이 한국만화가협회가 주관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된 것. 그는 데뷔 30년만에 상을 타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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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은 여느 만화보다 발품이 많이 드는 작품. 그는 문하생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유명 음식점을 찾아 조리과정과 비법을 상세하게 취재한다.

“제대로 된 음식 만화는 독자가 군침을 흘릴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야 합니다. 그런 느낌을 주려면 음식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직접 본 뒤 그려야 하지요. 음식 만드는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 것은 필수지요.”

○만화 한 컷 그리려 전국돌며 자료 수집

현장을 다녀왔어도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적지 않다. 찌개, 탕 등 국물이 많은 음식의 오묘한 맛을 세세히 묘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느낀 맛을 표현하는데 적확한 단어를 찾거나 그림을 그리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는 30년간 변함없는 인기를 누려왔다. 그 비결은 탄탄한 그림과 스토리 텔링은 물론 철저한 자기관리라는 게 주위의 평. 이를테면, 하루일과가 규칙적이지 않은 작가들이 많은 데 비해 그는 ‘매일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을 지킨다. ‘셋만 모이면 술상을 본다’고 할 만큼 애주가였지만 요즘은 거의 1차에서 자리를 끝낸다.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는 편이지요. 데뷔 초기 새벽 4시부터 낮 12시까지 일했는데, 앞으로 아침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그 때처럼 일해 보렵니다.”

허씨의 얼굴은 그가 낳은 대표적 캐릭터 ‘강토’와 닮았다. 그는 “이상무의 ‘독고탁’도 작가와 꼭 닮았잖아요”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경사가 겹쳤다. 다음달 만화문화연구소(소장 손상익) 주도로 10여명의 만화평론가들이 허영만의 작품세계와 작가론을 쓴 글들을 모아 평전을 내놓는 것. 생존 만화가에 관한 평전이 나오는 것은 처음이다.

○생존 만화가로는 국내 첫 평전 내달 나와

손 소장은 “허영만씨는 국내에서 대중의 기호에 맞는 작품을 그릴 줄 아는 유일한 작가”라며 “80년대초 스포츠 붐을 담은 ‘무당거미’, 이념을 다룬 ‘오 한강’, 90년대 감성을 그린 ‘비트’, 그리고 전문영역으로 파고 들어간 ‘식객’ 등 끊임없는 변신으로 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씨는 자신의 평전에 대해 “제3자가 정리해주는 것이라 고맙긴 한데 부담스럽다”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산은 사람을 배반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즐겨 산을 탄다’는 그에게 ‘만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더울 때 마시는 한 잔의 청량음료라고나 할까요. 사람에 따라 가벼운 한 모금일 수도, 꼭 필요한 한 모금일 수도 있죠.”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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