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교수의 여가클리닉]아내에게 '해방의 주말'을…

  • 입력 2002년 4월 25일 15시 15분


Q: 분당에 사는 호백이 아빠입니다. 열 살, 네 살인 극성스러운 아들만 둘입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하면 아내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봐야 준비하고 뒷정리하는 일은 모두 다 자신의 몫이라는 겁니다. 저 나름대로 도울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합니다만…. 그래서인지 요즘 집안 분위기가 별로입니다.

A: 남편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아내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아내는 무조건 가족중심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모성이 본능이기 때문에 여자는 가족과 관련된 일에는 무조건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요즘 모성이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모성이 생물학적인 본능이라면 부성도 당연히 본능적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적인 반박도 있고요.

페미니즘 논쟁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호백이 아빠가 가끔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삼겹살 구워 먹으며 정치인들 욕하는 것을 더 재미있어 하듯이 호백이 엄마도 가끔은 가족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더구나 극성스러운 아들 둘을 일주일 내내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하다가 주말에 남편에 의지해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이 다음에 아이들이 모두 장가들었을 때, 아내가 주말에 호백이 아빠와 단 둘이 있는 것을 귀찮아 하다못해 함께 등산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시죠? 등산가서 늙은 남편 내버리고 아내 혼자만 돌아 온다는 정말 무서운(?) 이야기. 아직 젊었을 때, 아내가 가끔씩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주말을 즐길 수 있게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노후가 편안할 겁니다.

이번 주말에는 폼 나는 콘서트 표 두 장 사가지고 들어가세요. 아내에게는 마음 맞는 친구와 구경가라고 하고 호백이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야구장에 가는 겁니다. 어느 편이든 목쉬게 응원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 사우나에 들려 목욕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도 사 먹는 겁니다. 아이들은 느닷없는 아빠의 친절에 약간은 당황하겠지만 이내 적응할 겁니다. 단 주의할 점은 아내에게 절대 생색내지 말라는 겁니다. 호백이 아빠의 하루 동안의 처절한 노력이 생색내는 말 한마디에 아주 우습지도 않게 무너집니다.

그러는 저는 아내에게 잘 하느냐고요? 음,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금요일 WEEKEND에디션이 발행될 때마다 저희 집 모든 여성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제 아내는 물론이고 함께 사시는 어머니, 시집간 여동생까지 전화로 난리입니다. 차라리 몰라서 안 했다면 용서가 되겠지만 그렇게 잘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비난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아내가 시키는 대로 썼습니다. 호백이는 제 큰 아들입니다.

www.leisure-studies.com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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