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현장칼럼] 한국온 조총련계 교환학생 주영길씨

  • 입력 2003년 5월 8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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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연세대 외국인 학생 휴식공간인 글로벌라운지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영길씨(21). 쾌활한 성격의 주씨는 신학기가 시작된 이래 연세대 친구들과 국제학사 학생들 사이에 ‘인기 짱’의 친구로 떠올랐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6일 오후 연세대 외국인 학생 휴식공간인 글로벌라운지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영길씨(21). 쾌활한 성격의 주씨는 신학기가 시작된 이래 연세대 친구들과 국제학사 학생들 사이에 ‘인기 짱’의 친구로 떠올랐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3월부터 연세대에서 1년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소속 대학생 주영길씨(21). 일본에 살고 있는 10만명의 총련계 중 국내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포는 주씨가 처음이다.

주씨는 일본 도쿄(東京)의 주오(中央)대 상학부 상업무역학과 3학년이다. 연세대 교정에서 처음 만나던 2일 낮 그는 전직 워싱턴 포스트 기자 돈 오버도퍼가 쓴 한국현대사인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을 읽고 있었다. 그는 이 책 중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술이지만 결국 미래를 위한 것이다’란 대목이 특히 마음에 든다며 손때 묻은 책장을 펼쳐 보였다.

● 첫인상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 주황색 아디다스 스니커즈,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샀다는 패셔너블한 티셔츠와 바지,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주인공 헉 핀처럼 쾌활한 표정….

함께 교정을 걷는 동안 연세대생 예닐곱명이 주씨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두 달 동안 친구를 참 많이도 사귀었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거든다. “영길이의 친화력은 놀라울 정도예요.”

주씨는 3월 자신이 머무는 기숙사인 연세대 국제학사에 처음으로 축구단을 만들었고, 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단장이 됐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3시반까지는 3명의 연세대생에게 무료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2일 동행한 일본어 ‘과외 수업’에서 만난 이 대학 경영학과 2학년 이향아씨(21)는 “총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영길이를 만난 이후 사라졌다”고 했다.

주씨는 자신의 이상형을 수줍게 소개했다. “머리가 좋고 피부가 하얀 여자,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이영애 같은 여자요.”

일본의 비디오숍에서 빌려본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은 주씨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북한 병사가 말했어요. 초코파이를 공화국(북한)에서도 만들고 싶다고. 그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 한국에 오기까지

1982년 일본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600㎞ 떨어진 아키타(秋田)현에서 태어났다. 후쿠시마(福島)현에서 일본 유치원을 다녔지만 이후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 도호쿠(東北) 조선고급학교 등 12년간의 초·중·고등 교육은 모두 총련계 학교인 민족학교에서 받았다.

역사와 지리 과목에 흥미를 느껴 일본에서 비교적 다른 나라 학교들과 교류 프로그램이 많은 주오대에 입학한 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오게 됐다.

주씨는 ‘조선적(籍)’을 가진 재일동포 3세다. 조선적은 한국 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재일동포의 지위를 가리키는 말로 북한 국적은 물론 아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1937년 계약 농부의 자격으로 일본 규슈(九州)에 정착했다. 2세인 아버지(52)는 현재 삿포로(札幌)에 있는 총련계 신용조합의 역원(임원), 어머니(46)는 후쿠시마에서 보험 사무원으로 일한다. 누나(23)는 후쿠시마 조선학교의 교원, 여동생(19)은 총련계 대학으로는 유일한 조선대에 올해 입학했다. 주씨 가족은 총련계 동포 중 중상층 수준의 생활을 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반 거리에 있는 헤이스팅스의 한 학교에서 영어 어학연수를 받다가 역시 어학연수를 온 한국인 친구와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주씨의 사고틀 속 한국인의 이미지는 ‘임수경’이 거의 전부였다. 민족학교의 역사수업은 한국의 정치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이나 시위를 부각했다.

● 남과 북

2일 저녁 서울 신촌의 한 레스토랑에서 주씨는 접시 위에 놓인 포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여러개라고 생각해요. 포크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포크가 놓인 모양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니까요. 사실만을 따지면 내가 민족학교에서 배운 교육은 틀렸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진실은 또 다른 문제지요.”

주씨는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을 발전시킨’ 김일성 전 주석의 업적은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에 대해 ‘김일성씨’라는 호칭을 썼다. 민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실에서 공놀이를 하다 실수로 교실 전면 중앙에 걸려있던 ‘대원수님(김일성)’의 초상화 사진에 공을 던지면 수업 후 조회에서 ‘반성’을 해야 했던 그였다.

“저 같은 조선적은 국적에 대한 정체성이 없어 외부 자극에 흔들리기 쉬워요. 1995년 김일성 사망 이후 집권한 김정일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인기가 없어요. 지난해 9월 열린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북한 공작원의 일본인 납치를 공식 인정한 이후 일본 언론은 연일 재일동포 단체를 비난했죠. 저 역시 북한에 대해 실망했어요. ‘납치는 없다’고 배웠던 큰 신념이 무너졌으니까요.”

주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0년 평양으로 10박11일 일정의 수학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본 북한은 학교에서 배우던 ‘그리운 조국’은 아니었다. 북한에서 만난 일가친척에게 일본돈 10만엔(약100만원)을 건네 준 뒤에는 그가 검문에서 돈을 뺏기지 않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을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주씨는 북한 사람도, 남한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니다. 2월 연세대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 때 한 교직원이 그를 ‘북한에서 온 학생’이라고 소개해 깜짝 놀랐다. 심지어 연세대 학생들이 그를 환영하는 뜻에서 인공기를 게양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춘기에는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 사람이 부러웠다. 총련계로는 드물게 진보적인 아버지는 북-일정상회담 이후 “네가 원한다면 한국 국적을 선택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은 내 피가 흐르는 곳이에요. 북한, 남한, 일본 모두에서 조금씩의 ‘은혜’를 받았어요. 북한은 일본의 민족학교에 수백억원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지원해 왔고, 내 뿌리를 알게 해 줬어요. 남한은 현재 연세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요. 선진국인 일본에 살고 있는 것은 세계의 다른 후진국에 사는 것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이겠죠.”

그는 그동안 나라를 찾는 일과 자아를 찾는 일을 동일시하다보니 늘 괴로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겠다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비롯한 다른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행복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 재일동포 3세의 한국생활

주씨는 2월 한국에 온 이후 서울 코엑스, 동대문시장, 여의도공원, 대학로, 고려대, 이화여대, 교보문고 등에 가 봤다. 특히 옷입기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동대문시장을 ‘홈그라운드’라고 말할 정도로 자주 찾는다. 여의도공원의 벚꽃놀이를 구경하고서는 벚꽃이 일본의 나라꽃인 사실과는 별개로 ‘꽃이 곱다고 여기는 마음은 한국 사람도 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강남’과 ‘강북’이라는 단어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 주씨는 “강남의 책임으로 강북의 지위가 내려가는 것 같다”는 귀여운 감상을 전했다. 한국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시위는 낡은 생각과 새로운 생각 사이에 또 하나의 다른 의견을 형성하는 측면에서 좋다”고도 했다.

한국인은 친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차갑기도 하다. 카페에서 일본인 친구와 일본어로 대화하면 드러내놓고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 꽤 있다. 또 학교에서 만나는 대학생들은 필요 이상의 영어를 쓸 때가 많다.

지난달에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축구대표팀 친선경기’를 보러 갔다가 그곳에서 구입한 태극기를 등에 두르고 한국을 응원했다. 그 태극기는 지금 그의 기숙사 방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지난해 월드컵을 계기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됐다.

4일은 마침 그의 생일이었다.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함께 본 후 칼국수를 사 주었더니 “칼국수를 처음 먹어본다”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한 경주 불국사 등 한국의 유적을 실컷 보고 싶다고도 했다.

주씨는 “내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쳐 준 조선학교에 감사하고 있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평소 혼자 길을 걸을 때 뒤에서 ‘간첩’이 따라오는 것 같은 ‘식스 센스(Sixth Sense)’를 느낀다”는 고백은 아릿한 여운을 남겼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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