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바람의 방향
등 뒤에서 발걸음 재촉하듯 불어오면 힘껏 버텨라. 인생의 속도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 떠밀려 가지 말라. 쓰러뜨릴 듯 정면에서 닥쳐오거든 그것 또한 버텨라. 시련에 맞서 돌파한 자만이, 따스한 봄날을 누릴 것이다. ― 미국 유타 자이언캐니언에서 사진=최혁중 기자 sajinman@d…
-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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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발걸음 재촉하듯 불어오면 힘껏 버텨라. 인생의 속도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 떠밀려 가지 말라. 쓰러뜨릴 듯 정면에서 닥쳐오거든 그것 또한 버텨라. 시련에 맞서 돌파한 자만이, 따스한 봄날을 누릴 것이다. ― 미국 유타 자이언캐니언에서 사진=최혁중 기자 sajinman@d…
기억하는가. 수줍은 실개천 유채밭 에둘러 흐르고, 새벽마다 실안개 산허리 감싸던 곳. 아침이면 정겨운 동무들 까르르 구르는 소리, 해질녘 어머니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 길게 퍼지던. 이제는 가끔 꺼내는 지갑 속 주름진 사진으로, 눈 감으면 아득한 꿈속 화폭으로 남았지만. 차마…
파릇한 새싹 살포시 감아든 너의 손가락은 빛난다. 갓 움튼 생명 품은 초록빛처럼 참 부럽게도 빛난다. 새벽녘 먼 하늘 동터 오듯, 얼었던 삼 월 대지 봄볕 스미듯, 너의 시간도 그렇게 찬란하게 밝아오겠다. 짧은 세월 이리저리 헤매 온 나의 손은 주름졌다. 피었던 것들은 언젠간 모두…
긴 고민의 말줄임표 끝에 마침내 찍은 느낌표처럼 서걱서걱 눈밭 헤치고 성큼성큼 진격하는 그대 한 자루 장검(長劍)처럼 겨드랑이 낀 서핑보드 하나면 집채만 한 겨울파도도, 우리네 근심 걱정도 손오공 근두운 타듯 유유자적 올라타리. ― 강원 양양 죽도해변 사진=양회성 기자 yoh…
나비가 날아든다. 훨훨. 꽃이 만개한다. 활짝. 성곽 앞 황무지에도. 저 멀리 들려온다. 봄 오는 소리. 나비와 꽃이 담긴 그림 한 폭이 성곽의 메마름을 적셔줍니다. 시와 주인 없는 날개는 고(故) 김복동 할머니께 바치려 합니다. 할머니,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 ―…
국경의 긴 터널 끝에 있다는 순백의 설국을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가보았을까. 2017년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지. 긴 눈길을 아이젠에 의지해 터벅터벅 걸어갔을 때 숲이 있었어. 하늘, 땅, 나무 모두 눈부시도록 하얗게 뒤집어쓴 채 찬란한 빛인지 아니면 아득한 기억인지 모를 그…
어릴 땐 슈퍼맨처럼 보였던 부모님이 늙어갑니다. 슈퍼맨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조그만 어깨의 백발노인이 있습니다. 그들의 청춘을 먹고 자란 나는 제법 어른입니다. 나무 세 그루가 아빠, 엄마, 그 사이의 아이 같아 오야코(父子) 나무라고 하지요. 언젠가 양옆의 부모는 시들고 흙으로…
“너처럼 똑똑하고 단단해지고 싶어.” 아이는 마주 선 로봇의 손을 꼬옥 잡으며 새해 소망을 전했다. “왜 나처럼 되고 싶어?” 로봇이 물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혼내주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잖아. 네 소원은 뭐니?” 아이가 물었다. “너처럼 …
빨갛게 떠오르는 새해를 기록하라. 얼어붙은 공기와 몰아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발까지 모두 기록하라. 그 삼백몇십 개 기록의 마지막 줄에 “나는 더 나아졌다”고 쓸 수 있도록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기록하라.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사진=장승윤 기자 toma…
누워서 밤하늘을 쳐다봅니다. 무수한 별이 미동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별은 빠르게 움직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숨은 흔적은 남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인생처럼.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에서 사진=박영철 기자 skybl…
다가가면 오히려 멀어집니다. 걸음을 멈춰야 도망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별이 제법 가까이에 있습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사진=최혁중 sajinman@donga.com / 원대연 기자 글=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왼쪽부터 서울 청계…
“거의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오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특히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던 구성원들이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을 대표하여 저희가 두 손 모아 줄지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제 정말로, 새해를 맞아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으니까요.” 사…
검은 바닷물이 모든 밝음을 빨아들이고 나면 물에 녹아버릴 하얀 글씨를 모래에 써 봅니다. 잊는다 못 잊는다 온전히 사랑한다. 햇빛 비추고 모래가 하얘지면 지워질 시를 새하얀 글씨로 허무하게 허무하게 흘려봅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글=…
하늘에 맞닿은 마을에는 계절도 빨리 찾아옵니다. 새파랗게 찬 공기를 가만히 그 다음 새하얀 눈을 조용히, 폭신한 솜구름 그 위에 덮고 아른거리는 별빛 뿌리고 나면 영하 몇 도 그 따뜻한 겨울밤이 하늘에 맞닿은 마을에서 잠이 듭니다.―해발 700m 강원 평창군 용평면 재산리에…
계절이 지나가는 공기 속에는 보석 같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 내린 작은 원을 끝없이 바라봅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시간에도 봄이 오면 내 이 거친 시간 우에도 자랑처럼 내 이름자가 무성할거외다.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면 홍시가 되어라. 더욱 달고 달아져서, 늦었음이 아니라 완숙하고 있었음을 알려라. 바람 못 이기고 땅에 떨어졌다면 나무가 되어라. 낙오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가치를 품었음을 보여라. 가장 높이 열렸다면 날짐승의 먹이가 되어라. 가장 풍족한 햇살을 받…
물속에서 밖을 쳐다보니 뿌옇게 흐립니다. 사물이 굴절돼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왜곡돼 보인 세상이 원하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더 아름답게 보이니까요. ―전남 장성군 백양사 계곡에서 사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글=이유종 기자 pen@don…
붉게 타오르되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을 것. 경계를 가지지 말고 차별 없이 어울릴 것. 혼자 돋보이기보다 다 함께 더 아름다울 것. 다가올 혹한을 견뎌낼 수 있도록 위안을 줄 것. ―서울 노원구 제명호에서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
대웅전 기와가 되지 못한 가난한 소원들은 부처님 가장 먼 곳에 아슬아슬하게 쌓인다. 조금이라도 부처님 보시기 편할 높은 곳 찾아 간절함의 파편까지 모아 한 층 더 쌓아올린다. 무너지지 말라는 바람까지 하나 더 얹힌 채 담벼락엔 키 작은 소원들이 소복소복 쌓인다. ―경주 불국사에…
‘지금 어디 가는 거지. 아침에 밥 유난히 맛있던데 설마 나 지금 병원 가는 건가. 아님 짝 찾으러 애견카페? 가을이라 좀 외롭긴 했지. 근데 나 발톱 좀 긴데. 그러고 보니 주인님 요즘 나한테 좀 소홀한 듯. 아, 내려서 쉬 하고 싶은데 잠깐 세워주면 안 되나. 지금 맞은편 사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