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교수 “‘잃어버린 5년’ 다음 정권서 회복 못하면 암담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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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인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가 도쿄 와세다대의 연구실에서 집값, 환율, 노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 경제의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잘못된 정책으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아직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한국통인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가 도쿄 와세다대의 연구실에서 집값, 환율, 노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 경제의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잘못된 정책으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아직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일본이 지금 먹고살 수 있는 것은 1980년대에 열심히 벌어 둔 덕분이다. 한국으로서는 지금이 일본의 1980년대에 해당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한가하게 논쟁할 여유가 없다. 전력을 다해 성장해야 한다.”

일본 경제학자 중 한국 경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早稻田)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경제의 발전 단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노무현 정권에서 ‘잃어버린 5년’을 다음 정권에서 ‘황금의 5년’으로 바꿔 놓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고령화의 부담을 견뎌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이 경제는 물론 정치와 외교 면에서 겪는 혼란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출석 점수’(최하점이라는 뜻)와 같은 수준이라며 “요즘은 부동산정책 외에는 경제정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후카가와 교수는 그의 대학 연구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된 1시간 반 동안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먼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된 한국의 집값 문제부터 물어봤다.

―한국의 아파트 값이 거품이라고 보는가.

“집값은 세계적으로 높은 추세다. 한국만 돌출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 강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어서 일본의 거품과는 다르다. 문제는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뒤틀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 현 정부는 모순된 부동산정책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바람에 경제 주체들이 장래 가격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부동산 이외의 경제정책에 대한 그의 평가도 궁금했다.

―2004년 서울의 한 세미나에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100점 만점에 30점”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충격이었겠지만 지금은 한국인의 80%가 동의하리라고 본다.”

―지지율에 비하면 30점도 높은 점수 아닌가.

“나는 학생이 출석만 하면 30점은 준다.”

―현 정권이 이를 만회할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 기업은 강하다. 기업의 활력이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 기업이 무엇을 바라는지, 어떻게 하면 한국 내에 투자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최근 한국 정부는 외국 기업의 투자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 외국 자본은 보조 엔진일 뿐 주 엔진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 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데 외국 기업이 투자할 이유가 있겠는가.”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원인 중 하나로 강경한 노조를 꼽았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모두 임금을 인하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겪었지만 한국과 같은 대량 실업은 경험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나만은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가급적 고용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건비 상승을 억제하게 된다.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현금을 갖고도 국내에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노조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려는 경영자가 거의 없다.”

화제를 바꿔 한국 경제의 최대 고민인 원고(高)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다.

―원화 가치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총체적인 달러 약세의 영향도 크지만 설비투자 부진이 큰 원인이다. 극심한 불황 속에서 엔화 가치만 높았던 일본의 1995, 1996년 상황과 비슷하다. 엔고의 영향으로 수출이 부진하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입이 줄어 경상 흑자가 쌓였다. 경상 흑자는 다시 엔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한국이 지금 이런 전철을 밟으려 한다.”

―한국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데….

“한미 FTA는 필요하다. 다만 일본이나 중국과 FTA를 먼저 체결하는 편이 협상 전략상 유리했을 것이다. FTA 관련 갈등은 현 정부의 추진 방식이 틀려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전략이 틀렸으면 고치면 되지만 ‘선의의 무능’에는 약이 없다. 이상을 실현하려면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는데 현 집권세력은 그러지 않는다. FTA뿐만이 아니다. ‘언제나 나만 옳다’는 태도를 고집하면 아무도 협력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올바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패하면 점점 자기를 방어하려고 더욱 이상주의에 기울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들(현 집권세력)이 좀 더 여유를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끝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다.

“한국은 지금 혼란을 겪을 뿐이다. 성장 기회를 잃은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스피드(신속함)라는 강점이 있다. 흔히 ‘한국 기업의 기술력은 일본보다 몇 년 뒤떨어져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도요타자동차는 GM이나 포드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를 경쟁자로 생각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후카가와 유키코는

동아시아 경제와 제도, 산업발전 연구에 전념해 온 한국통 경제학자.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나 1982년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와세다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87년 한국산업연구원(KIET)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년 넘게 한국 경제를 연구 관찰하며 한국의 학계, 재계와 연구기관에 폭넓은 인맥과 정보 채널을 구축했고 한일관계 각종 학술회의의 단골 명사로도 인기가 높다. 주요 저서로 ‘한국선진국경제론’ ‘정책위기의 국제비교’ ‘중국의 WTO 가맹과 동아시아의 장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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