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인트

연재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기사 61

구독 0

날짜선택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고구마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고구마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마 이야기다. 조선후기 문신 서영보(1759∼1816)는 호남위유사로 호남 남쪽 해안의 사정을 살피고, 보고서를 올린다. 정조 18년(1794년) 12월의 일이다. 내용 중에 엉뚱하게도 “왜 고구마가 널리 퍼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있다. …

    • 2016-05-11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위어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위어

    ‘사옹원(司饔院)이 위어(葦魚)를 잡아 궁중으로 올리는데, 승정원 승지들은 자기들이 먹으려 졸곡제(卒哭祭) 전에 위어로 젓갈을 담갔습니다. 승지들이 이런 일을 했다니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승지들을 모두 갈아 치우소서.’ 중종 10년(1515년) 윤4월 17일의 기록이다(‘조선왕…

    • 2016-05-04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추어탕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추어탕

    미꾸라지는 미끄럽다. 다산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주는 글에서 ‘재물(財物)은 더욱 단단히 잡으려 하면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것이니 재화야말로 미꾸라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다산시문집’) 미꾸라지는 천하다. 영조 때 형조참의 벼슬을 했던 문신 유관현(1692∼1764)은 높은…

    • 2016-04-27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귀한 얼음, 西氷庫 방화 사건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귀한 얼음, 西氷庫 방화 사건

    인조 2년(1624년) 12월 22일, 한양 도성의 외곽, 한강변 백성들이 서빙고를 불태웠다. 방화다. ‘인조실록’에는 ‘광해군 시절 서빙고에서 일하던 주민들이 이를 기회로 곡식을 훔쳐 먹었다. 인조 즉위 후, 곡식 훔치는 일을 막자 이를 원망하여 서빙고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인조…

    • 2016-04-20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후추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후추

    선조 20년(1587년) 9월 1일의 기사(‘선조수정실록’)는 처연하다. 일본에서 다치바나(橘康廣)가 사신으로 왔다. 전례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예조판서를 앞세워 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다치바나가 고의로 후추를 흩어 놓았다. 기생과 악공들이 앞다투어 후추를 줍느라, 연회장이 뒤…

    • 2016-04-13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소주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소주

    태종 17년(1417년) 윤 5월 4일의 기록. 수원부사 박강생과 전 과천현감 윤돈을 사헌부가 고발한다. 두 사람은 결국 파직되었다. 죄목이 엉뚱하다. ‘두 사람이 금천현감 김문에게 소주를 많이 권하여 죽게 했다’는 것이다. 윤돈이 과천현감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인근 고을 관리들이 전…

    • 2016-04-06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사슴 꼬리(鹿尾)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사슴 꼬리(鹿尾)

    짐작하지 못할 식재료는 아니다. 짐작은 하지만, ‘글쎄? 그게 어떤 맛일까?’라는 궁금증은 든다. 사슴꼬리, 녹미(鹿尾) 이야기다. 연산군 10년(1504년) 10월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사슴꼬리 때문에 애꿎은 관찰사의 목이 떨어질 판이다. 연산군, 누구나 알듯이 해괴한 짓 많…

    • 2016-03-29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물밥(水飯)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물밥(水飯)

    효종 5년(1654년) 2월 10일, 정언 이상진이 영의정 정태화와 병조판서 원두표를 탄핵한다. 병조판서가 술상과 기생, 음악을 준비하여 상급자인 영의정의 집에서 한바탕 놀았다는 것이다. 상소문 중에 세종대왕 당시 영의정 황희와 호조판서 김종서의 ‘물에 만 밥’, 수반(水飯) 접대가 …

    • 2016-03-22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미나리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미나리

    죄는 사소해 보였다. 궁궐 세자궁 연못의 미나리가 거칠고 나빴다. 벌은 엄했다. 사옹방(司饔房)과 침장고(沈藏庫)의 벼슬아치들이 대거 중벌을 받았다. 사옹방은 국왕과 왕실의 음식을 챙기는 곳이고 침장고는 채소를 기르고 챙기는 곳이다. ‘세조실록’ 11년(1465년) 5월의 기록이다. …

    • 2016-03-15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명태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명태

    참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동아일보 1921년 8월 30일의 기사다. ‘북관명산(北關名産)의 명태는 명천의 어부 태(太)씨의 어획이 그 시초되었음으로, 그를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함경도) 명천에 사는 태씨 어부의 명태’는 고종 시절 영의정을 지냈던 …

    • 2016-03-08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복어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복어

    복어는 에로틱하다. ‘서시유(西施乳).’ 서시는 월나라 미인이다. 복어가 서시의 젖가슴 같다고 했으니 에로틱하다. 와전이다. ‘서시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복어고 또 다른 하나는 문방사우 중 백자연적(白磁硯滴)이다. 백자연적의 둥글고 흰빛이 서시의 젖가슴을 닮았다는 뜻이다. 빙허각 …

    • 2016-03-01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인삼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인삼

    “인삼(人蔘)은 늘 조선에서 오는데, 조선에 어찌 그리 인삼이 많습니까? 조선에서 오는 홍삼(紅蔘)은 심홍색으로 밝고, 윤이 나는데 산삼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1855년(철종 6년) 12월 초. 베이징에 간 조선 사신단의 종사관 서경순이 만난 중국 문인 주당(周棠)의 질문이다.…

    • 2016-02-23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국왕의 고기반찬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국왕의 고기반찬

    임금이 입에 넣었던 음식을 뱉었다? 영조 47년(1771년) 6월 29일(음력) 아침의 일이다. “오늘은 선의왕후의 제사다. 아침상에 육찬(肉饌)이 있었는데, 눈이 침침해서 분간하지 못하고 집어먹었다가 깨닫고서 토했다.” 영조의 나이 78세, 돌아가시기 5년 전이다. 선의왕후는 이복형…

    • 2016-02-16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쇠고기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쇠고기

    왕실 종친이 소를 밀도살했다? 대형 스캔들이다. 성종 5년(1474년) 12월 7일(음력). 사헌부 이형원(李亨元)이 상소를 올린다. 내용이 대단하다. ‘동양정 이서(東陽正 李徐)가 소를 밀도살했다’는 것이다. 실제 소를 도축한 사람은 기술자인 거골장(去骨匠) 김산이다. 현장을 …

    • 2016-02-02
    • 좋아요
    • 코멘트
  •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청어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청어

    역시 문제는 세금이다. 청어 이야기다. 19세기 중엽, ‘서해 바다 청어 밀무역’ 사건이 적발된다. 서해상 ‘풍천, 장연 경계’에서 조선의 배들이 청나라 배에 청어를 판다. 불법이다. 청나라 문종(文宗·1831∼1861) 무렵이다(‘임하필기’). 풍천은 지금의 송화다. 옹진반도 위…

    • 2016-01-26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