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윤리사상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이 敬이다. 송나라 유학자들은 主一無適(주일무적)을 敬이라고 정의했다. 자기 자신을 오로지하여 다른 데로 분산시키지 않는 상태를 敬이라고 본 것이다. 단, 정약용은 敬이란 하늘을 공경하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일과 같이 구체적
上은 爲政者(위정자)다. 好禮는 예를 좋아해서 예법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禮란 상하의 구별, 내외의 분별 등 올바른 질서를 가리킨다. 則은 조건(가정)과 결과를 이어주는 접속사다. 부릴 使는 統治(통치)한다는 말이다. ‘논어’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역
과거에 천자는 선왕이 죽으면 삼 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服喪(복상)의 규정도 매우 상세했다. ‘書經(서경)’에 보면 “殷(은)나라 高宗(고종)은 居喪(거상)하여 諒陰(양암)에 삼 년 동안 있으면서 정치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諒陰은 諒闇(양암)
세상을 과감하게 잊고 은둔하는 것을 果忘(과망)이라고 한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나왔으니, 790호에 이어진다. 공자의 경쇠 연주를 들은 荷(괴,궤)者(하궤자·삼태기 멘 사람)는 그 音色에서 ‘마음에 품은 것이 있음’을 간파했다. 한참 듣고 있다가 그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은 참으로 名文이다. 삼태기를 멘 隱者(은자)가 등장하여 공자를 비판하고 이에 대해 공자가 대응하는 방식이 연극처럼 생생하다. 우선 앞부분만 본다. 荷(괴,궤)者(하궤자·삼태기 멘 은자)의 비판을 통해 거꾸로 공자의 위대한 인격과 사
‘논어’에는 공자나 제자가 隱者(은자)를 만난 이야기가 있다. ‘憲問(헌문)’의 이 章에는 새벽에 성문 여는 일을 맡아 보던 은자가 등장한다. 성명을 알 수 없어 晨門(신문)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논어’의 편찬자들은 은자의 일이나 물건을 근거로 보통명사를 만들고
‘논어’ ‘憲問(헌문)’의 賢者(벽,피)世章(현자피세장) 가운데 일부다. 공자는 時中(시중)을 중시해서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공직에서 물러나라고 가르쳤다. 여기서는 어진 이가 벼슬을 그만두는 상황을 넷으로 나눠 정리했다. 첫째,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魯(노)나라 定公(정공) 12년에 大司寇(대사구)로 있던 공자는 孟孫氏(맹손씨) 叔孫氏(숙손씨) 季孫氏(계손씨)의 세 도읍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군사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제자 子路(자로)는 季孫氏의 宰(재)로 있으면서 공자를 도왔다. 맹손씨가 저항했으므로 공자는 군사를
만년의 공자는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공자는 자신을 칭송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실은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아마도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것은 하늘이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 호(785)에서 이어진다. 공자는 時運(시운)이 따
만년의 공자는 그 令名(영명·아름다운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라고 慨嘆(개탄)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탄식을 鶴鳴之嘆(학명지탄)이라고 한
흔히, 무례하게 구는 사람도 은혜로 대하라고 말한다. 그런 厚德(후덕)함을 진심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有意(유의)의 私心(사심)에서 그런다면 원망스러운 사람을 대하는 일도 은혜로운 사람을 대하는 일도 모두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 ‘논어’의 ‘憲問(헌
‘공자가어’에 보면, 魯(노)나라 哀公(애공)이 공자에게 인재 선발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활은 조절이 잘되어 있으면서 비거리가 먼 억센 것을 구하고 말은 잘 길들여져 있으면서 천리를 달리는 힘을 갖춘 말을 구하는 법입니다. 선비도 반드시
공자의 시대에는 세상과 絶交(절교)한 사람이 많았다. 微生畝(미생묘)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날 그가 공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대는 허둥대고 안달하는데, 말재간이나 부려 세상에 쓰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공자는 자신이 결코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심리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讀心術(독심술)을 (취,타)摩(췌마)라 한다. 전국시대 때 遊說(유세)를 하던 사람들은 군주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했다. 蘇秦(소진)은 그 기술에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상대의 마음을 推察(추찰)
사람은 자기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고 남에게 알려져 重用(중용)되기만 바라고, 중용되지 않으면 不平(불평)을 말하고는 한다. 공자는 그러한 투덜거림을 거듭 경계했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은 ‘學而(학이)’의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요 患不知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