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여러 기준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논어’ ‘季氏’에서 공자는 배움의 조건과 태도를 기준으로 삼아서 인간을 네 부류로 나누었다. 곧, 生知(생지) 學知(학지) 困知(곤지) 下愚(하우)의 넷이다. 生而知之의 生而는 태어나면서부터라는 뜻이고 知之
지난 호에 이어진다. 공자는 도리를 알아 실천해나가는 군자라면 三畏(삼외)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이 三畏다. 그런데 군자와 달리 삶의 참된 의미를 알려 하지 않고 명예나 이익만 추구한다든가 악행을
‘논어’ ‘季氏’의 제8장에서 공자는 도리를 알아 실천해나가는 군자라면 세 가지 두려워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三畏라 한다. 畏란 敬畏(경외)함이다. 군자는 天命을 경외해야 한다. 또한 군자는 덕이 높은 大人을 경외해야 하고, 도덕의 기준이 되는 옛 성인
인간은 志氣와 血氣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血氣는 혈액의 운동에서 생겨나는 生氣로 인간의 본능에 속하므로 누구나 연령별로 비슷한 특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위대한 인물은 志氣가 남달라서 혈기를 억제하고 좋은 방향으로 써 나갈 수 있다. ‘논어’ ‘季氏’의
‘논어’ ‘季氏(계씨)’의 제6장에서 공자는 君子와의 대화 때 三愆(삼건)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君子는 연령 및 지위가 높은 사람과 덕이 높은 사람을 모두 포괄한다. 三愆의 愆은 과실 過와 같다. 어른이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이쪽에서 먼저 한다면 조급하다 하
‘논어’ ‘季氏(계씨)’의 다섯 번째 장에 나오는 三樂는 ‘삼요’라고 읽는다. 樂를 ‘좋아할 요’로 읽는 것이다. 단, 일본의 오규 소라이나 우리나라의 정약용은 ‘즐길 락’으로 읽어야 의미가 깊다고 했다. 여기서는 관습적인 독법을 따랐다. 三樂는 세 가지 좋아함
三益(삼익)과 三損(삼손)이라 하면, 내게 유익한 세 부류의 벗과 내게 손해를 끼치는 세 부류의 사람을 가리킨다. ‘논어’ ‘季氏(계씨)’의 네 번째 장에서 공자가 交友(교우)의 문제를 논하면서 益者三友와 損者三友를 꼽은 데서 나온 말이다. 友直, 友諒, 友多聞은 벗
‘논어’ ‘季氏(계씨)’의 두 번째 장에서 공자는 下剋上(하극상)의 亂世(난세)를 개탄하여 禮樂(예악)을 제정하고 征伐(정벌)을 명하는 일은 천자의 권한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서 천하가 안정되면 천자나 제후가 아닌 대부가 政事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또 윗
‘논어’ ‘季氏(계씨)’의 두 번째 장은 공자의 이 말로 시작한다. 禮樂은 정책 일반을 가리키고 征伐은 악한 자를 誅殺(주살)하고 責望(책망)하는 일을 가리킨다. 예부터 예악을 제정하고 정벌을 명하는 일은 천자의 권한이라고 여겨져 왔으므로 공자는 이렇게 말한 것이
‘논어’ ‘季氏(계씨)’의 첫 장은 공자의 이 말로 매듭지어진다. 공자는 노나라 대부 季氏가 전臾(전유)를 정벌하려고 계획할 때 제자 염有(염유)와 季路가 저지하지 못한 사실을 비난하고 爲政者(위정자)는 境域(경역) 안의 文德을 진흥해서 遠人이 信服(신복)하도록 해
고려 초에 大學士와 學士들이 임금에게 經書를 講論(강론)하던 곳을 文德殿(문덕전)이라 했다. 1136년(인종 14)에는 修文殿(수문전)이라 고쳤는데 그때부터 고려 말까지 右文館(우문관)이라 했다가 다시 수문전이라 하는 등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다. 文德殿이나 修文殿이라
지난 호에 이어진다. 공자는 염有(염유)와 季路가 노나라 대부 季氏의 가신으로 있으면서 전臾(전유)를 정벌하려고 하는 계씨의 모의에 가담한 사실을 알고 그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영토와 인구를 늘리려 하지 말고, 상하의 계급이 제자리를 지키고 각 계층의
지난 호에 이어진다. 노나라 대부 季氏가 전臾(전유)를 정벌하려고 하자 계씨의 가신인 염有(염유)와 季路가 공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는데 공자는 두 사람이 계씨를 저지하지 못한 것을 질책했다. 그러자 염유는 전유가 要害地(요해지)인 데다 계씨의 영지인 費(비)에 가까
지난 호에 이어진다. 노나라 대부 季氏가 전臾(전유)를 정벌하려고 하자 계씨의 가신인 염有(염유)와 季路가 공자에게 알렸다. 공자는 계씨가 노나라의 社稷之臣(사직지신)인 전유를 정벌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일을 저지하지 못한 염유를 꾸짖었다. 염유는 자기의 뜻
‘논어’ ‘季氏(계씨)’의 첫 章에 나오는 문장이다. ‘계씨’편은 각 章의 형식이 일정하지 않다. 魯論 齊論 古論의 세 텍스트 가운데 齊論이었을지 모른다. 그 첫 章은 노나라 대부 季氏가 전臾(전유)를 정벌하려고 하자 계씨의 가신인 염有(염유)와 季路(계로)가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