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내용을 공유하는 영화와 공연을 맞대놓고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26일 막을 올린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리스 산토리니 앞바다의 반짝이며 부서지는 물보라를 보여줄 수 없다. 푸른색 배경과 조명의 조합으로 최선의 분위기를 전달할 뿐이다. 열창하는 여주인공의 촉촉한 눈망울을 클…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우리 클래식 공연계에서 기획으로 승부를 걸어 히트 상품이 된 젊은 클래식 연주자 그룹 ‘앙상블 디토’. 하지만 디토를 벗어나면 생각나는 이름이 없다. 공연장과 기획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클래식을 상품으로 만들기에 게을리한 탓이다. 23일 서울 예…
연극적 과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막이 열리고 10분 정도 지날 때까지 ‘잘못 들어와 앉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던져지는 이야기를 한 입 두 입 넘길수록 뒷맛이 부담 없이 야릇하다. 1시간 40분 뒤 입안에 남은 것은 뜻밖의 소박한 맛집을 찾아낸 청량감이었다. 시작은 어색하기 짝이 …
“어때요? 걱정할 만하죠?” 제작자인 듯했다. 공연이 끝난 뒤 출구 옆에 서있던 그가 티켓판매 대행사 관계자로 보이는 관객 두 명에게 다가가 물었다. 엿들으려 한 것은 아닌데 귀에 묘하게 걸렸다.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별로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15…
솔오페라단의 ‘나부코’(15∼17일·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3월 국립오페라단의 ‘팔스타프’와 더불어 올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이탈리아 모데나에 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과의 협력으로 기획한 이 프로덕션은 모든 오페라의 …
7월 초 토요일 오후였다. 첫 뮤지컬 취재를 마치고 한동안 로비 구석에 서서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내용은 안이했고 음악은 버성겼다. 하지만 관객 절반이 기립박수로 열광했다. 내 시각과 청각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 난간에 기대 사람들을 보며 한참 동안 생각했다. …
11, 12일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풍성한 만찬을 차려냈다. 래틀 자신의 표현대로 다양한 맛이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낸 프로그램이었다. 혼연일체가 된 현이 빚어내는 유려한 앙상블, 흠잡을 데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금관과 목관의 소리는 베를린필이 왜…
“×○○. ×발 △ 같은 개○○.” “미친 병신 개○○.” 걸쭉하다. 국립극단이 ‘청소년 연극’이라는 수식을 붙인 연극 ‘노란 달’ 속 대사다. 욕에 어울리는 폭력과 살인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다. 14세 이상 관람가지만 10대 자녀와 함께 본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는 편이 좋다.…
“응. 재미있어.” “이렇게 재미없는 건 처음 봤다.” 9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세 자매’의 인터미션 중 관객 반응이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따라 화장실로 가던 10대 초반 남자아이의 말. 다음은 애인을 이끌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던 긴 생머리 여…
터미널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공공의 공간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저마다의 강렬한 기억이 24시간 동시다발로 곳곳에 새겨져 쌓인다. 이별하고, 재회하고, 떠나고, 돌아오고, 끝내고, 시작한다. ‘해바라기’(1970년)부터 ‘러브 액츄얼리’(2003년)까지, 고갱이 장면이 터미널인 영…
1990년대 말 PC통신 동아리 멤버들은 금요일 정기 채팅 방을 ‘자폐 방’이라고 불렀다. 분명 함께 모여 떠들었지만 언제나 저마다의 이야기로 조각조각 흩어졌다. 일상의 대화가 어쩌면 대개 그렇다. 소설이나 TV드라마 속 대화와 다르다. 뚜렷한 호응을 맺으며 흘러가지 못하기 일쑤다. …
한 음 한 음이 생기 있고 영롱하게 반짝이면서도 선율은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갔다.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67) 리사이틀은 우리 시대의 거장과 마주하는 자리였다. 슈베르트, 쇼팽, 베토벤으로 꾸민 프로그램은 선명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니 30년 전이다. 사촌형을 따라 유랑 서커스단 구경을 갔다. 송진 냄새 흥건한 천막을 들추고 마주한 광경은 신기하기보다 애처로웠다. 모래먼지 자욱한 작은 무대에서 소박한 묘기를 보여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같이 경직돼 있었다. 지난달 처음 서울 용산구 서계동 …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에플랑 바부제(51)의 첫 내한 리사이틀은 최전성기를 구가하는 그의 명성을 확인한 무대였다. 19일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난 관객은 ‘유레카! 하는 탄성이 나올 듯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게 하는 피아니스트’(파이낸셜타임스)라는 평에 고개를 끄덕일…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68)의 내한 공연 프로그램 북에는 단 세 곡만 명시돼 있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그리그 소나타 3번, 타르티니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타르티니 이후의 곡들은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발표되고 연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