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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게한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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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명지대 교수

    전봇대에 붙어 있는 조그만 광고를 보자마자 무작정 찾아갔다. ‘극단 동인극장 연구생 구함’이라고 적힌 종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배우가 되겠다고 상경한 나는 그렇게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거기서 배우 김갑수 형을 만났다. 극장에서 기숙하면서 배우들의 양말을

    •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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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변광옥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장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웃에 사는 친구들과 가재를 잡으러 뒷동산 계곡에 갔다. 초겨울에다 산중이라 추웠다. 손발이 시려오는 것을 참지 못해 주머니 속에 있던 성냥을 켜 모닥불을 피웠다. 그런데 모닥불이 바람에 날려 산으로 옮아붙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불을 껐지만

    •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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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소연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이라는 글을 쓰려고 보니 무엇보다 매일 새벽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주 어릴 적 “우리 강아지가 박사네∼” 하시며 오늘의 나를 예견하신 외할머니, 갖은 구박과 놀림을 가장한 애정 표현으로 끊

    •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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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길여 가천대 총장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나 역시 훌륭한 어머니의 ‘등’을 보면서 자랐다. 어머니(차데레사·세례명)는 1910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나이에 옥구군(현 군산시) 대야면으로

    •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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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나의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 주고 나에게 운명적인 변화의 기회를 주었던 은인 중에서 한 분을 골라 그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많은 분이 떠올라서 어떤 분의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미국 유학 시절 나의 지도교수였던 세계적인 디자인 멘토

    • 20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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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강현숙 한국농구연맹 심판위원장

    “엄마, 나 오늘 농구선수 됐어.” 서울 광희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농구선수 할 사람 손을 들어라”고 말씀하자 서슴없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던 내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그러고는 집에 돌

    • 201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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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금난새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서울예고는 내가 음악가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해준 곳이다. 음악생도들과 나눈 대화, 미술과 학생의 그림으로 가득 찬 복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용과 학생들의 ‘백조의 호수’ 공연…. 지휘과가 없어 작곡과로 들어간지라 지휘를 배울 수는 없었지만

    • 20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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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구혜자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기능보유자

    시댁에서는 달마다 제사를 지내고 설과 추석에 따로 차례를 지냈다. 아버지가 목사인 기독교 집안에서, 응접실에 소파가 놓여 있고 서재가 따로 있는 서양식 집에서 자라난 내가 맏며느리가 돼 시댁의 한옥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댁 분위기에 젖는 데 꽤 오랜 시간이

    •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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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헌정 도예 작가

    나의 은사이자 이젠 감히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로버트 라스뮤센 씨를 만나게 된 건 히피문화와 펑크아트의 발상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 1993년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히피문화와 펑크아트에 매료돼 떠났던 타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

    •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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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박정자 연극배우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연극을 봤던 생각이 난다. 부민관(현재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공연하던 극단 신협(국립극단의 전신)의 ‘원술랑’이었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아들 원술랑 얘기다. 원술랑을 사모하는 소녀 진달래 역을 맡았던 배우 김선영의 청아하고 낭랑한 목소리,

    • 20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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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하나의 인격체로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가 묻는다면 대부분 어머니를 들 것이다. 자식 걱정을 어머니만큼 하는 사람이 없고 그 심정은 자식의 품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 201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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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박효남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주방장

    숨이 턱턱 막혔다. 어깨에 연탄을 짊어지고 달동네 좁은 골목을 힘겹게 오를 때면 배고픔은 차라리 사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새까만 연탄 자국과 땀 냄새가 뒤섞인 암울한 회색빛이었다. 동생들을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천신만고 끝

    • 20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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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대진 피아니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이 모든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생각해 본다. 나를 있게 한 사람을 생각하면 스승님들이 떠오른다. 나는 세 분의 피아노 선생님께 배웠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뇌막염으로 서너 달 학교를 쉬어야

    • 20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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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나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아버지는 항상 극복의 대상이었다. 유능하고 잘생긴 변호사였던 그분은 언제나 호탕하셨다. 술도 많이 마시고 놀기도 잘하셨다. 글을 잘 쓰셨지만 결코 착실한 편은 아니어서 책은 한 권도 남기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당시 집안 망하는 첩경이라던 국

    • 201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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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만수 프로야구 SK 2군 감독

    대구중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포수가 마음에 끌렸다. 마스크를 쓰고 앉아 소리를 지르며 수비진을 지휘하고 투수를 리드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면 힘들 때도 있다. 섭씨 37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에 경기를 치르면 몸무게가 2∼3kg이나 빠졌

    • 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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