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혁신, 한쪽 손은 풀자는데… 다른 손은 더 조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21일 대전에서 열린 제4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전=뉴스1
21일 대전에서 열린 제4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전=뉴스1
● “해외송금 핀테크 투자 길 확대”

이낙연 총리 ‘규제혁파 현장대화’서 방안 제시

해외송금 업무를 하는 핀테크 업체는 올해 말부터 벤처캐피털 업체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다. 해외송금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000달러당 송금 비용이 현행 4만∼5만 원에서 1만 원 미만으로 낮아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바이오 신물질을 활용한 녹조 제거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기술평가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1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열린 ‘4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신기술 사업화 촉진을 위한 규제혁신 추진방안을 내놓았다. 이 총리는 현행 규제체계와 관련해 “과학자들이 볼 때 훨씬 머리 나쁜 사람들이 규제를 만들고 과거 기술을 기준으로 규제를 만든다”고 비판했다.

규제혁신 추진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말 벤처육성특별법과 중기창업지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벤처캐피털사가 해외송금 핀테크 업체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예정이다. 지금까지 해외송금 기업은 금융기관으로 분류돼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을 수 없었다. 이상창 중소벤처기업부 투자회수관리과장은 “송금전문업체가 아니더라도 중소기업 기준을 맞추고 해외송금 업무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으면 투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을 활용한 녹조 제거 업체의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도 손보기로 했다. 현재 녹조 제거 평가는 황토를 뿌려 녹조를 가라앉게 하는 방식만 허용하고 있다. 이날 녹조 제거 전문기업 워터바이오텍은 직접 녹조를 없애는 기술을 시연했다.

택시미터를 기존 기계식 미터기 대신 애플리케이션(앱) 미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차량 바퀴 회전수로 요금을 측정하는 현행 방식 대신 스마트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능을 이용한 이동거리 측정 방식으로 바꿔 요금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아울러 사람 대신 돈을 운용하는 소프트웨어인 로보어드바이저와 관련한 각종 규제를 철폐해 금융서비스의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지금은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를 직접 운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금융투자업 규정을 바꿔 직접 돈을 굴릴 수 있게 하고 다른 금융회사의 자산을 위탁 운용하는 것도 허용하는 것이다.

이 밖에 간단한 피검사로 질병을 확인하는 체외진단용 의료기기 임상통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메탄올 연료전지의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규제개혁 아이디어도 나왔다. 이 총리는 이날 “공무원들이 선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자의적 작업중지, 기업 옥죄기”

경총, 국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반대 의견


국내 한 반도체 사업장은 현재 129개 협력업체 근로자의 안전보건조치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되면 2, 3차 협력업체까지 최대 5600개 업체와 안전보건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 업체들이 실시한 교육도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산안법 전부개정안에 재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산업안전도 중요하지만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옥죄게 된다는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무한정 확장시킨 것으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을 법이 규정한 것”이라며 “국내에서 제조업 공장 운영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산안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경영계 의견’을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공식 제출했다.

이번 개정은 1990년 이후 28년 만으로 작업 현장을 전방위로 규제하고 있다. 도급을 주는 기업의 안전보건조치 대상을 확대했을뿐더러 중대 재해 발생 때 작업중지 규정을 신설했고, 유해 작업은 도급을 원천 금지했다. 고용노동부는 “법의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재계는 경영활동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규제’로 보고 있다.

경총은 국회에 낸 반대 의견에서 ‘산업안전사고에 따른 사업장 작업중지 명령은 행정기관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해 과잉 행정조치’라고 밝혔다. 마음만 먹으면 영업정지 같은 제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경총이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고용부로부터 작업중지 명령을 받은 중공업, 철강 등 주요 7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작업중지 기간 21일에 피해 금액은 600억∼1200억 원이었다. 지난해 10월 한 고무제품 생산 기업에서는 컨베이어 근로자 1명이 사망하자 사고와 관련 없는 물류창고 등 모든 공장 작업을 중단시켜 국내외 관련 기업으로 피해가 커졌다. 이 기업은 18일 동안 작업이 중단돼 직접피해액만 900억 원에 달했다.

개정안은 또 수급업체 근로자가 도급인 사업장에서 작업하면 도급인이 광범위한 안전·보건 책임을 지고, 문제가 생기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다.

도금 등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의 도급을 금지한 데 대해서도 경총은 ‘국내외 입법사례가 없고 과잉금지’라고 반대했다. 화학물질을 제조, 수입하는 기업이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기재하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로 비공개하려면 고용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환경부에 화학물질을 제출해야 하는 기존 규정이 있어 중복 규제라는 것이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유근형 기자 /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규제혁신#이낙연#문재인 정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