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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잡史]중국산 연분서 박가분까지… 방문판매 원조](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10/23/86898429.1.jpg)
“종이에 싼 흰 가루 한 봉지를 펼쳐 놓고 문 곁에서 말하기를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구나. 늙은 아내는 병이 많아 머리 감기조차 못하고 화장대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네.”(이색의 ‘매분자·賣粉者’에서) 기생들을 왕실로 불러들여 연희를 자주 즐겼던 연산군은 보염서(補艶署)를 두어…
“대국 세 판이 진행되며 득과 실, 날카로움과 무딤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구경꾼 모두 눈을 부릅뜨고 한쪽 발을 굴리며 그 형세를 돕고자 훈수를 두었다.”(조선 후기 학자 안중관의 ‘회와집·悔窩集’ 중) 삼국시대부터 사랑받던 바둑은 조선후기에 이르면 온 가족이 즐기는 놀이…

“저 역관(譯官)들은 자기들의 목전 이익만 탐하고 국가의 장구한 계책은 알지 못하여, 수십 년 이래 밤낮 오직 당전의 통용을 소원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화살 가는 데 따라 과녁 세우기’나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다를 바 없다.”(박지원 ‘연암집’에서) 조선은 정기적으로 청나…
![[조선의 잡史]하루 300리… 조선시대에도 ‘이봉주’ ‘황영조’가 있었네](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10/02/86617185.1.jpg)
“태상 4년(408년)… 고구려가 다시 사신을 보내 천리인(人)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남연(南燕)의 군주 모용초(慕容超)에게 두 가지 선물을 보냈다. 천리마와 천리인이다. 천리인은 천리마처럼 하루에 1000리(400km)…
![[조선의 잡史]수레 운임, 무명 2필… 사람 치어 유배도](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9/25/86506643.1.jpg)
“용산의 한 차부가 서울 성중으로 짐을 운반하고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대개 죄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용산 차부가 수레로 실어가는 것이 상례였다.”(구수훈의 이순록·二旬錄에서) 조선시대 사람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운송업자를 차부(車夫)라 불렀다. 이들은 조선 초…
![[조선의 잡史]조선 여심 사로잡은 가체… 초가집 수십채 가격 달해](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9/19/86390660.1.jpg)
“가장이 금하지 못하니, 부녀자들이 가체를 더 사치스럽게 하고 더 크게 만들지 못할까 걱정이다. 근래 어떤 집의 열세 살 난 며느리가 가체를 높고 무겁게 만들었다. 시아버지가 방 안에 들어오자 며느리가 갑자기 일어서다가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졌다.”(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조선의 잡史]가난한 선비 호구책… 과거 합격시키면 ‘팽’](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9/11/86260062.1.jpg)
“이날 낮부터 감기를 앓기 시작해서 크게 아팠다. … 월매가 내내 병구완을 해주었다. 월매와 함께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흘렀다. 의향의 어머니도 병구완을 하러 왔다.”(부북일기·赴北日記 1645년 4월 3일) 조선에서 무과에 합격한 군관은 1년 동안 의무적으로 최전방인 함경…
![[조선의 잡史]과거시험 답지 대필… 일부 부정행위도](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8/28/86032347.1.jpg)
“표암 강세황이 ‘내가 남에게 서법을 많이 가르쳤으나 정 군처럼 빠르게 성취한 자는 없었다’라고 했다. 우리 형제의 과거시험지와 원고는 모두 그가 글씨를 썼다.”(심노숭의 ‘자저실기·自著實紀’ 중에서) 1차 기록물의 대부분을 직접 붓으로 작성했던 시대, 글씨는 지식인이 갖춰야 할 …
“맹인은 사농공상에 끼지 못해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으나, 주역을 배워 점을 치고 겸해서 경문을 외워 살아간다. … 저잣거리를 다니며 노래하듯 ‘문수(問數·운수 물어보오)’라 외친다.”(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별다른 직업이 없던 ‘심청전’ 속 심학규와 달…
![[조선의 잡史]도라지를 아교로 붙인 뒤… “인삼 사세요”](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8/14/85811286.1.jpg)
“도라지를 인삼으로, 까마귀 고기를 꿩고기로, 말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이는 자도 있고, 누룩에 술지게미를 섞고 메주에 팥을 섞는 자도 있다.…요즘은 소금이 귀한데 간신히 사고 보면 메밀가루를 섞었다.”(윤기·尹<의 ‘무명자집·無名子集’ 중 ‘협리한화·峽裏閒話’에서) 조선 후기 서울에…
![[조선의 잡史]“집 중개수수료로 매매가의 10% 챙겨”](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8/07/85707813.1.jpg)
“특별히 집주름이 나타나 생업을 꾸리니, 큰 집인지 게딱지인지를 속으로 따진다.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 동쪽 집 사람에게 서쪽 집을 가리킨다.”(신택권의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중에서) 조선시대에는 부동산중개업자를 ‘집주름(家쾌·가쾌)’이라 불렀다. 이들이 직…
![[조선의 잡史]시신 수습 실적따라 관직 제수 받기도](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7/24/85490022.1.jpg)
“선조 27년(1594년), 굶주린 백성이 대낮에 서로 잡아먹고 역병까지 겹쳐 죽은 자가 이어졌다. 수구문 밖에 그 시체를 쌓으니 성보다 높았다. 승려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매장하니 이듬해에 끝났다.”(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조선시대에는 전쟁이나 기근으로 길에서 죽은 사람이 적지 않…
![[조선의 잡史]저잣거리 ‘책 읽어주는 남자’ 중요대목선 꼭 침묵, 왜](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7/17/85383793.1.jpg)
“종로 담뱃가게에서 소설 듣던 사람이 영웅이 실의하는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더니 담배 써는 칼로 소설책 읽어주는 사람을 쳐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한다.”(정조실록 정조 14년·1790년 8월 10일 기사에서) 18세기 조선은 소설에 빠졌다. 궁궐에서 촌구석까…
![[조선의 잡史]더럽다고 얕보지마… 똥장수 연수입, 한양 집 한채 값](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7/07/10/85274403.1.jpg)
“그 친구는 종본탑(宗本塔·현 서울 탑골공원 주변으로 추정) 동편에 살면서 매일 마을의 똥을 져 나르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서 바지게(거름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을 치는 것이다.”(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 1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