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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사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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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돼지저금통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돼지저금통

    지난여름인가, 막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조카가 결연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큰 이모, 나연이는 커서 꼭 평민이 될 거야.” 나는 오랜만에 듣는 ‘평민’이라는 단어에 잠깐 주춤하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학교에서 계급 사회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양반들은 나쁜 …

    • 201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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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이야기]압정

    [조경란의 사물이야기]압정

    작업실 문 안쪽에 스케치북 사이즈만 한 코르크 보드 하나를 걸어두었다. 잊고 싶지 않은 글귀나 그때그때 필요한 메모들을 압정으로 고정시켜 놓고 작업실을 오갈 때마다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마감 날짜가 지난 원고 청탁서를 떼려다가 오랜만에 그 보드 앞에 멈춰 서서 벌써 수개월째 혹…

    •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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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이야기]와인 코르크

    [조경란의 사물이야기]와인 코르크

    문학 계간지에 단편소설 마감을 앞두고 있다. 잠시 손을 놓고 딴생각에 빠져 본다. 학창시절 시험 기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시험 끝나고 나면 무엇을 하고 놀까? 신나게 계획을 세우던 때처럼. 그러고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올려둔 피아노 위를 한번 흘긋 본다. 십오륙 년 전에 한 이…

    •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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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가위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가위

    미국 대선이 한창이다. 8년 전 이맘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머물고 있었다. 4개월 동안 살게 된 숙소에 도착해 보니 ‘가구’라는 것은 일절 없었고 화장실에도 두루마리 휴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와 당장 필요한 이불 매트리스 책상 의자를 사러 이케아로 달려갔다. 하룻밤…

    •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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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비닐우산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비닐우산

    태풍 피해 복구가 한창인 제주에서 며칠 머물게 되었다. 평생교육원에서 일을 마친 당일 저녁만 제외하고 거의 온종일 비가 오고 세차게 바람이 불었다. 늘 가방에 챙겨 갖고 다니는 삼단 우산으로는 턱도 없어 커다란 박쥐우산 같은 것을 하나 사야 하지 않을까 망설일 때는 또 잠깐씩 비가 그…

    • 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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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손수건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손수건

    강의실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왜 손수건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 거냐고 물었다. 출석부, 커피 텀블러, 물병, 손수건 두 개가 놓여 있는 교탁을 가리키면서. 동네 술집 창가 자리에서 에디터와 이야길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소식이 끊겼…

    •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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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핸드밀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핸드밀

    커피를 처음 마셔 본 게 언제였는지? 중학교 때 원예반 선생님은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자 이따금 카페에 데리고 가셨다. ‘뜨락’이라는 데였는데 선생님 댁과 우리들의 집과도 멀지 않은 곳이었고, 알고 보니 우리 동네였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열일곱 살 때 그 카페에서 커피를 …

    • 201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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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편지지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편지지

    동네 소방서 옆에 여고가 있습니다. 산책할 때면 운동장이 있어서 그런지 교정에 들어가 국민체조 같은 걸 한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 학교에서 근무한 선생님 한 분이 정년퇴직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하루 평균 서너 통씩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왔다고 합니다.…

    • 20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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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뒤집개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뒤집개

    벌써 열흘도 전부터 점심을 먹을 때면 어머니는 동네에 대목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배추 값이 얼마나 뛰었는지,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나는 차례 음식은 한 접시씩만 하고 요즘 구경도 하기 어렵다는 비싼 시금치 대신 부추를 데쳐서 상에 올리고 햇김치로는 열무김치를 …

    • 201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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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지우개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지우개

    저자가 일본 ‘문구왕’이라고 알려진 ‘궁극의 문구’라는 책은 개인적으로 내용보다는 목차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 책의 목차는 이를테면 ‘쓰다’ ‘붙이다’ ‘지우다’ ‘자르다’ ‘엮다’ ‘재다’ ‘정리하다’ 등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로 구분되어 있다. 목차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연…

    •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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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텀블러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텀블러

    너무나 뜨거웠던 여름을 보상해 주기라도 하듯 하루아침에 가을이 날아와 버린 느낌이다. 때라도 맞춘 듯 대학은 내일부터 2학기 수업을 시작한다. 강의 노트에 메모를 하고 구두를 닦고 커피를 담아 갖고 다니는 텀블러들을 세척하여 건조시키는 것으로 개강 준비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여…

    •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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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앨범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앨범

    동생들이 차례대로 결혼을 하게 돼 집을 떠날 때, 나와 자매들은 가족 앨범을 모두 꺼내놓고 사진들을 나눠가졌다. 독사진은 각자 챙기면 간단했지만 문제는 오래전에 찍은 가족사진들이었다. 각 사진에 대한 서로의 은근한 애착 때문에 사진을 나누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나…

    •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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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수첩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수첩

    한 주 동안 ‘굴드의 피아노’라는 책에 빠져 지냈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사망한 후 캐나다 국립도서관에 그의 유품들이 도착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유품 중에는 그 유명한 ‘난쟁이 의자’도 있었다. 1953년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굴드가 ‘평생 애착(愛着)을 지녔던 물건’…

    •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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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부채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부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오후에 인사동에 갔다. 아는 이의 전시도 보고 오랜만에 인사동 길을 좀 걸어 다녀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미술관에서 나오자마자 에어컨이 켜져 있을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관광객들, 상점 앞의 사람들 틈에서 무언가 팔락거리고 있…

    •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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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연필

    [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연필

    새 학기는 연필을 깎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을 텐데도 아버지는 연필이나 공책 같은 학용품만큼은 넉넉하게 사다 주곤 했다. 1970년대 후반이니까 아마도 낙타표 문화연필이나 동아연필이었을 텐데, 나한테 생의 첫 번째 연필은 사막에서 건설 일을 하던 아버지가 집에 …

    • 20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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