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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소설가는 오늘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역사 속 하루를 발굴해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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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년 9월 21일 고구려, 형제의 분열로 멸망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9/18/130054243.7.jpg)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무찌르고 당 태종의 거센 공격도 물리쳤던 고구려는 668년 9월 21일에 멸망했다. 평양성이 당나라에 함락되었다. 이적은 평양성을 한 달이나 포위 공격했다. 이때 신라 역시 군대를 동원해 공격에 나섰다. 신라군은 7월 16일 한성에서 출발했고, 평양 인근의 사천에…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 아닌 ‘한국강제병합’[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8/29/126737821.1.jpg)
1910년 8월 29일, 이미 나라로서 기능은 마비되고 숨만 쉬고 있던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한국이 강제 병합된 조약 명칭을 ‘한일합방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알지만, 이 조약에는 원래 이름이 없이 그냥 ‘조약’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합방이라는 말은 동등…
![기원전 6년 8월 백제와의 국경 정해진 마한… 온조왕 때 멸망했다는 건 낭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8/07/126398363.15.jpg)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 8월에 이런 기록이 있다. “사신을 마한에 보내 천도를 고했다. 이로써 국경을 그어 정하니 북쪽은 패하에 이르고 남쪽은 웅천까지 하고 서쪽은 큰 바다에 닿으며 동쪽은 주양까지로 했다.” 백제 지배집단은 고구려에서 분리되어 남으로 내려왔…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 언론 봉쇄로 진상 은폐[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7/17/125988361.1.jpg)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은 기습적으로 조선의 왕궁인 경복궁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들은 동학농민군에 밀리던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자 이에 맞서 자국 공관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파병한 병력이었다. 명목은 그러했지만 청군의 파병 병력을 파악한 뒤에 그보다 많은 병력을…
![645년 6월 20일 당군 막아낸 안시성 전투, 성주는 ‘양만춘’이 아니다 [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6/27/125644374.1.jpg)
645년 3월 9일, 당 태종이 고구려에 선전포고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네 번 공격했으나 그 땅을 얻지 못했다. 이제 그 전사자의 원수를 갚고 고구려왕의 치욕을 갚아주고자 한다.” 고구려왕의 치욕이란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운 정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나라 군대는…
![1882년 6월 9일 임오군란,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6/05/125295802.14.jpg)
1882년 6월 9일, 임오군란이 발발했다. 보통 문제가 아닌 사건이었다. 군인들의 거사였다. 군인들에게 급료가 미지급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급료가 무려 13개월이나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멀쩡한 나라라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군란 발생 나흘 전, 한 달 치 급료를 쌀로 지급…
![1392년 5월 4일 정몽주 피살, 선죽교 ‘팩트 왜곡’의 전말[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5/16/124950632.1.jpg)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 불린다. 공민왕 9년(1360년)에 스물네 살의 나이로 장원급제해 정계에 등장했다. 공민왕 13년에 이성계의 여진족 정벌에 따라갔다. 이후 이성계와 동지가 됐다. 성리학에 해박하여 남들을 압도했다. 고려 말 대학자인 이색은 정몽주를 가리켜 ‘우리나라 성…
![1592년 4월 28일 탄금대 패전, 귀 막은 독선의 결과[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4/24/124637484.8.jpg)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불과 보름도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경상도를 장악했다.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명성을 날리던 장군 신립은 일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남쪽으로 급파되었다. 신립은 조령이라는 천혜의 관문을 지키지 않고 적들이 소백산맥을 넘어오기를 기다려 탄금대 앞 벌판에 진을 치고 …
![1696년 4월 29일 “흉한 것이 나왔다”… 숙종을 진노하게 한 ‘파묘’[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4/04/03/124304248.8.jpg)
숙종 22년(1696년) 4월 29일, 장희빈의 아버지 묘에서 흉한 것이 나왔다는 상소를 연서역(서울 은평구)의 생원이 올렸다. 세자를 위협한 행위라는 상소였다. “우리 동궁의 혈맥도 그 무덤에 서로 이어졌으므로, 이번에 변을 일으킨 자는 틀림없이 국적이니, 여느 요사한 죄로 취급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