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미국의 노골적인 ‘메모리 반도체 미국 투자’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무엇보다 비용 경쟁력이 핵심인 산업인데,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수익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공장을 미국에 세울 경우 국내 생산 대비 비용이 최소 2배 이상 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도 “미국에 반도체 팹을 지으면 건설 인건비는 아시아의 4~5배, 운영 인건비는 2~4배에 달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 메모리 3대 기업인 삼성, SK, 마이크론은 모두 아시아를 생산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비용이 낮고 숙련 인력이 풍부한 데다 소재와 장비 생태계가 이미 완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메모리 기업들이 미국에 잇따라 공장을 추가할 경우 과잉 공급 위험이 커진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주문형 생산이 가능한 파운드리와 달리, 메모리는 ‘만들어 놓고 파는’ 범용 제품 비중이 높죠. 과잉 공급이 발생하면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반대로 국내 생산을 줄이면 고용과 지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메모리 기업은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언급하자 업계에선 “메모리 산업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러트닉 장관은 이 발언을 마이크론의 뉴욕 ‘메가팹’ 착공식에서 내놨는데, 마이크론은 2040년까지 D램 생산의 40%를 미국에서 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미국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 칩’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자국 기업이 이에 호응한 셈입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지금은 메모리가 품귀지만 3~4년 뒤 업황은 알 수 없다”며 “파운드리와 달리 메모리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리스크가 큰 만큼 매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압박과 산업의 현실 사이에서,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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