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동아일보 취재팀이 방문한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도체스터에비뉴에 있는 1차 의료기관인 ‘도체스터 하우스 헬스’. 현지인이 줄여서 ‘닷하우스(Dot House)’로 부르는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의사는 40대 흑인 여성 환자를 5년 전에 처음 만났습니다. 만성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A 씨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뇌전증까지 앓고 있던 복합 질환자였습니다. 약을 처방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한국인 의사는 A 씨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사회복지사와 협력해 깨진 유리창이 방치된 A 씨의 임대주택을 수리한 것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동네의원인데, 여기에 복지사가 함께 근무하고 환자의 주거 환경까지 챙기는 겁니다.
‘닷 하우스’엔 사회복지사 뿐만아니라 영양사도 있습니다. 비만율이 높고 고혈압에 당뇨 환자가 많은 지역 특성상 보스턴의 1차 의료기관들은 영양사를 고용해 환자의 식단 조절까지 챙깁니다. 사회복지사와 영양사가 의사와 함께 주민들의 특성에 맞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환자에게 ‘맥도널드를 그만 드시라’고 할 것이 아니라 환자가 패스트푸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처럼 미국의 1차 의료기관은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이를 조기에 발견해 대형병원으로 보냅니다. 의사 한명에 간호 인력 서너명이 근무하는 한국의 동네 의원과는 사뭇 다른 운영 방식입니다. 이런 형태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1차 의료기관이 응급실 방문 확률을 35%, 대형병원 입원율을 11% 감소시킨다는 하버드 의대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보스턴 일대에서 1차 의료기관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진료비 지출 체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 의사가 수행한 검사나 시술 ‘한 건당’ 돈을 받는 행위별 수가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1차 의료기관이 영양사나 사회복지사를 뽑아 환자에게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대가를 지급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보스턴에선 1차 의료기관들이 진료비를 ‘환자 1명당’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우선 관리하는 환자 1명당 일정 금액 이상의 진료비를 받아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추후 환자의 건강상태가 개선되면 인센티브를 추가로 받는 시스템입니다.
사실 ‘닷하우스’처럼 경증, 만성 질환자 진료를 동네 의원에서 책임져 줘야 큰 병원이 중증, 응급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작은 병원과 큰 병원의 분업을 의료전달체계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의료 전달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입니다. 한국에선 6만8000여개의 동네 의원이 있는데,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한다면 큰 병원에 경증환자가 몰리고, 정작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표류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