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우리나라의 의대 정원은 3058명이었습니다. 당시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 수는 한국이 9.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9명)을 근소하게 앞섰습니다. 그때부터 17년째 우리나라의 의대 정원은 3058명에 묶여있습니다. 이후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 수는 한국의 경우 우하향 곡선을, OECD 평균은 우상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최근 OECD는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생 수가 13명이 넘었는데, 한국은 7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2배 가까이 차이가 벌어진 것입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중증·응급 환자의 ‘표류’ 해법을 찾기 위해 올 8월부터 10월까지 일본과 독일, 캐나다, 호주, 미국 등 5개국의 병원과 구급대 등 현장 15곳을 방문하고, 현지 전문가 44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고되고 위험한 필수의료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입니다. 해외에서도 의사 부족으로 인한 ‘표류’ 현상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거나 필수의료 유인책을 마련해 ‘표류’를 막고 있었습니다.
독일이 대표적입니다. 2021년 기준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가 4.5명으로 한국의 1.7배입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독일 의사협의회는 지금도 “의대정원을 더 늘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근로시간이 짧아지면서 실제 진료 여력은 오히려 줄었고, 이를 중증 응급환자에게 우선 배치하면서 경증 수술 등 대기가 길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기자가 독일에서 만난 보건자문위원은 “독일인들은 여전히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일본 정부는 2030년 전후로 의사 부족이 심해질 것을 2006년 예측했습니다. 이후 2007년 7625명이었던 의대 정원을 2019년 9420명으로 늘렸습니다. 그러나 필수의료 의사들은 “병상당 의사 수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추가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원만 늘린 게 아닙니다. 의대 정원 확대의 낙수효과만 믿고 손놓고 있는 게 아니라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가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독일은 이른바 ‘개원의 총랑제’를 통해 진료 과목마다 해당 지역에서 문을 열 수 있는 개인 병원의 수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원 러시로 대형 병원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일본은 의사 정원을 확대하면서 ‘지역의료 확보 장학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의대 정원 일부를 별도 전형으로 선발하고, 장학금을 주면서 10년 정도는 병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겁니다.
캐나다에서 만난 전문가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캐나다도 피부 미용 분야 의사가 돈을 더 잘 벌긴 하지만 이 때문에 필수의료 분야가 인력난을 겪지는 않는다. 만약 의대 졸업생 대다수가 소득을 위해 비필수 의료 분야를 택한다면 그건 의대 입학생 선별의 실패다.” 캐나다는 의대 입학 때 성적뿐만 아니라 의사가 되려는 이유와 봉사활동 등 인성 평가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선진국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결국 필수의료 대책은 의대 증원 문제로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정부가 미래를 내다보고, 더 종합적이고 치밀한 대책을 내놔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