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6>시아버지의 따뜻한 마음
아들 있는 집에서는 좋은 며느리 들이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자식에게 잘해 주고 혹 여력이 있어 시부모까지 잘 받들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러자면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9세기 경상도 밀양에 살던 이제영(李濟永·1799∼1871)
-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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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있는 집에서는 좋은 며느리 들이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자식에게 잘해 주고 혹 여력이 있어 시부모까지 잘 받들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러자면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9세기 경상도 밀양에 살던 이제영(李濟永·1799∼1871)
조선시대 선비들은 설이나 입춘(立春)을 맞으면 춘첩자(春帖子)라고 하는 시를 지어 문에다 붙이고 한 해의 길상(吉祥)을 축원하였습니다. 설이나 입춘이 멀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을 때인지라, 개인이 아닌 만백성의 행복을 축원한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춘
한겨울 깡깡 언 강에서 썰매를 타고 얼음을 지치는 풍경은 이제 흑백사진처럼 아련합니다. 지금은 잘 얼지 않는 한강이지만 조선시대 글을 보면 한강에서 썰매를 탄 기록이 제법 보입니다. 조선시대 썰매는 설마(雪馬)라 적었습니다. 원래 산악에서 사냥이나 운송을 위하여
윗자리에 있는 분들은 모두 백성을 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창한 구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심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이용휴(李用休·1708∼1782)는 포의(布衣)의 문형(文衡)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베옷을 입은 벼슬 없는 선비였지만 경세(經世)의 문장을 펼치는 대제
냉면은 추운 날 먹어야 더욱 맛이 있습니다. 냉면은 18세기 무렵 서도(西道)에서부터 유행한 듯합니다. 유득공(柳得恭)이 평양의 풍속을 시로 노래한 ‘서경잡절(西京雜絶)’에서 “냉면 때문에 돼지 수육 값이 막 올랐다네(冷면蒸豚價始騰)”라 하였으니 냉면에 넣을 돼지
![[이종묵의 ‘한시 마중’]<31>신혼부부의 겨울밤](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2/12/13/51550736.2.jpg)
18세기 후반 이안중(李安中)이라는 흥미로운 작가가 있었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의 노래를 즐겨 지었던 분입니다. 월령체(月令體)의 연작시 ‘월절변곡’을 지어 1월부터 12월까지 신혼부부의 사랑을 담아 놓았습니다. 압운(押韻)이니 평측(平仄)이니 하는 한시의 까다로운 형식을 갖추지 않았기…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글을 읽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1236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재상으로 있을 때 이 시를 지었습니다. 첫 번째 서설에 해당하는 작품에서 ‘인간사 우스운 일 자주 일어나지만, 낮에는 정이 많아 웃을 겨를 없
숙종 연간의 문인 조태채(趙泰采)는 ‘노쇠함을 탄식하며(歎衰)’라는 시에서 ‘병든 치아 있은들 몇 개나 되겠는가? 시든 백발 나날이 빠지니 몇 가닥 남았나? 앉으면 늘 졸음이 쏟아져 잠 생각만 간절하고, 일어날 때 허리 짚고 아이쿠 소리를 지른다(病齒時存凡幾箇 衰
실학자로 알려져 있는 김육(金堉·1580∼1658)은 젊은 시절 광해군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가평의 잠곡(潛谷)이라는 곳에 들어가 직접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인지라 시골집이 변변했을 리 없습니다. 사방은 온통 눈으로 뒤덮이고 하늘은 찌뿌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입니다. 의병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던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이 작품은 대설에 잘 어울립니다. 이 시는 고기잡이배를 그린 그림에 붙인 것입니다. 원경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근경에는 모래톱의 갈대
해가 늦게 뜨는 이즈음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바깥은 떠들썩합니다. 풍로에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처마 밑에 요란하게 울어대는 참새 울음소리도 들립니다. 부지런한 늙은 아내가 세수하고 빗질하고 나가 아침상을
![[이종묵의 ‘한시 마중’]<25>여인의 꿈을 밟고 가는 새벽길](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2/12/04/51312354.1.jpg)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1768년 초겨울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때까지 한양을 벗어나 먼 곳을 나가본 적이 없던 그가 스물일곱 나이에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마음에 풍정이 일었겠지요. 황해도 연안에 들러 하루를 묵었습니다. 이때가 음력 10월 22일이었습니다…
쌀쌀한 날씨라 절로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당깁니다. 가끔은 고깃국이나 생선탕보다 그 흔했던 쌀뜨물로 끓인 뜨물국이 그립기도 합니다. 한시(漢詩)는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규상(李奎象·1727∼1799)이라는 문인의 시가 그러합니다. 쌀이 귀하여 콩을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접어드니 하루하루 추워집니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습니다. 예전 선비들은 이럴 때 화로를 곁에 두고 차를 끓여 마셨습니다. 고려 말의 이숭인(李崇仁)은 “산속 조용한 방 안 밝은 창가에서 정갈한 탁자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차를 끓이면서 함께 시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이라는 시인이 “새벽 거울에 고운 머리 센 것이 근심스러운데, 밤에 시를 읊조리다 보니 달빛이 차구나(曉鏡但愁雲빈改, 夜吟應覺月光寒)”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거울 보기가 무서우니 바로 날로 많아지는 흰 머리카
감은 참 예쁩니다. 늦봄 속살 같은 빛깔을 드러내는 조그마한 꽃, 늦은 가을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잎은 참으로 곱습니다. 게다가 서리 맞아 붉게 익은 홍시는 맛까지 좋습니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1168∼1241)도 홍시를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시골 사람이 홍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에스파냐(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얻어 1492년 8월 신대륙 항해에 나섰다. 대서양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10월이 되자 지친 선원들은 스페인으로 돌아가자며 선장 콜럼버스를 닦달했고, 콜럼버스는 이렇
느지막이 귀가를 서두르다 마천루 위에 떠오른 둥근 달을 보노라면 오늘이 음력 며칠인지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음력 시월 보름입니다. 보름달도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시월의 보름달은 새벽녘에 보면 그 맑음이 뼈에 사무칩니다. 이 작품은 이행(李荇·1478
![[이종묵의 ‘한시 마중’]<19>청산만 들이는 집](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2/11/27/51137963.1.jpg)
정치는 요란하고 경제는 어려우며 세상 사람들 마음은 더욱 각박해져 갑니다.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갑니다. 이럴 때는 말 많은 사람이 아닌, 말 없는 푸른 산만 마주하고 싶습니다. “말없는 청산이요, 태없는 유수(流水)로다”라고 한 성혼(成渾)의 시조도 이런 마음에서…
돌아올 것을 기약하지 않고 길을 나서는 자가 진정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일 겁니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그러하였습니다. 안동김씨 명문의 일원이지만 벼슬보다 산수를 좋아하였기에 평생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의 여행벽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니,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