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권에 ‘가자 휴전결의안’ 통과… 이 “대표단 방미 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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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 거부권 썼던 美, ‘기권’ 선회… 이 “휴전 결의안, 하마스 돕는 것”
바이든, 대선앞 전쟁반대 여론 부담… 네타냐후, 휴전땐 정치 생명 위험

유엔안보리 15개국 중 美만 기권 25일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 본부에서 열린 ‘가자지구 즉각 휴전 결의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5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의 찬성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즉각 휴전 및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미국은 기권했다. 뉴욕=AP 뉴시스
유엔안보리 15개국 중 美만 기권 25일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 본부에서 열린 ‘가자지구 즉각 휴전 결의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5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의 찬성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즉각 휴전 및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미국은 기권했다. 뉴욕=AP 뉴시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5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가자지구 휴전 요구 결의가 25일 채택됐지만, 전쟁의 향배에 키를 쥐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등 비상임이사국들이 주도한 결의안에 미국이 기권표를 던지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협상대표단 파견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렸다. 대표단은 당초 이번 주 중 가자 최남단 라파 공격과 휴전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안보리 결의로 촉발된 양국의 갈등은 금방 가라앉긴 힘들어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전쟁에 정치적 명운이 걸려 있어 쉽사리 휴전을 택하긴 어렵다. 반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자국 내 전쟁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간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왔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빨리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 바이든에겐 전쟁이 대선 걸림돌

처음 전쟁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반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미국은 안보리의 휴전 결의안에 세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스라엘이 가자 민간인들이 밀집한 라파 지역에서 지상전 돌입 의지를 꺾지 않자,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 21∼22일 하버드대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전쟁 정책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약 38%에 불과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흑인 유권자 표심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게 결정적이다. 흑인 인권단체 ‘우리들만의 목소리’는 25일 “18∼29세 흑인 유권자의 38%만 올해 대선에 투표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이들이 투표조차 거부하는 배경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한 반대가 주요 이유로 꼽혔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유대계 정치인인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조차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나섰다. 슈머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를 “평화의 장애물”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은 하루빨리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네타냐후에겐 휴전이 총리 사임


이스라엘 총리실은 25일 유엔 결의안 채택 직후 성명에서 “인질 석방의 조건이 없는 휴전 결의안에 미국이 기권한 건, 인질을 풀어주지 않아도 휴전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마스에 심어줄 것”이라며 비난했다.

자국에서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네타냐후 총리로선 휴전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미 언론매체 액시오스도 미 관료들을 인용해 “백악관은 네타냐후가 자국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전쟁의 갈등을 키우고 싶어 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이스라엘 매체 마아리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만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지지를 포명했다. 네타냐후의 정치적 라이벌로 꼽히는 베니 간츠 국민통합당 대표가 총리에 더 어울린다는 답은 48%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를 포함한 이스라엘 극우 인사들은 “전쟁 중단은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강경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전시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간츠 대표는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게 옳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가서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해 내분 양상을 보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위원회 소속 상원의원이던 1982년 주미 이스라엘대사로 부임한 네타냐후 총리를 처음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40년 넘게 이어졌던 우정은 최근 서로 비난의 수위를 높이며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팔 전쟁#가자 휴전결의안#바이든#네타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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