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가뭄, 마른 들… 쭉정이… 농심도 바짝바짝

  • 입력 2006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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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작물 재배단지인 전남 해남군 황산면의 배추밭에서 17일 오후 한 농민이 바가지로 배추에 물을 뿌리고 있다. 스프링클러만으로는 시들어가는 배추를 살리기에 역부족이다. 해남=박영철 기자
밭작물 재배단지인 전남 해남군 황산면의 배추밭에서 17일 오후 한 농민이 바가지로 배추에 물을 뿌리고 있다. 스프링클러만으로는 시들어가는 배추를 살리기에 역부족이다. 해남=박영철 기자
가을 가뭄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가을 들녘과 농심이 타들어 가고 있다. 한강에는 녹조류가 늘면서 5년 만에 조류주의보가 발령됐다.

특히 지난달 중순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비가 흩뿌린 제주와 동해안 일대를 제외하고는 한 달 넘게 비를 구경하지 못한 곳도 많아 내년 봄 가뭄까지 우려되고 있다.

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9월 이후 강수량은 평년(1971∼2000년)의 30%를 밑돌았다.

서울의 경우 9월 이후 강수량이 11.2mm로 평년의 7%에 불과했다. 충청지방은 9월 평균 강수량이 0.5mm에 그쳤다. 특히 10월 들어 서울 경기, 전북, 경북, 강원 영서지방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추석 이후 농산물 가격 더 올라=가을 가뭄으로 한창 자랄 시기에 있는 김장용 무 배추와 파 당근 등 양념 채소류 재배 농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의 농민 최재문(49) 씨는 “땅이 메말라 이달 말 수확하려던 배추가 시들어 가고 있다”며 “기온까지 높아 경작지의 20%가량에 무사마귀병이 번졌다”고 말했다.

수확을 앞둔 들깨와 콩을 비롯한 밭작물도 성장 속도가 늦어지며 타격을 받고 있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농민 전규선(59) 씨는 “이미 수확한 흰콩은 지난해에 비해 생산량이 30%가량 줄었고 다음 달 수확할 검은콩은 꼬투리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아 지난해 수확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추석 이후 오히려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는 이상 현상도 빚어졌다.

강원 양양송이영농조합법인에 따르면 12일까지 수매된 송이는 3700kg으로 지난해의 60% 수준. 산지 습도가 낮아져 생산량이 줄면서 송이의 공판가격은 추석 무렵의 두 배에 가까운 kg당 61만 원대에 형성됐다.

▽식수, 산불, 단풍…‘빨간불’=최근 계속되는 가뭄과 이상고온으로 한강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증하면서 상수원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한강 일부 지역에는 이미 녹조현상이 생기고 부유물질도 크게 증가했다. 1급수였던 수질도 2급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1일 조류주의보를 발령하고 정수장에서 필터 역할을 하는 활성탄의 양을 2배로 늘리는 등 정수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상수원이 마르면서 식수난도 가중되고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장암리와 장척리 4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은 10일 넘게 소방차 급수에 의존하고 있다.

가뭄은 가을 단풍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국의 이름난 산에도 단풍이 들기 전에 잎이 심하게 말라 가고 있는 것.

산불 경계에도 비상령이 내렸다. 강원도는 산불대책본부를 예년에 비해 한 달 빠르게 가동하고 헬기 2대를 강릉과 원주시에 추가로 배치하는 등 특별경계에 들어갔다.

▽내년 봄 물 부족 상황 올 수도=가을 들어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고 증발량만 늘어 전국 대부분 지방은 평년에 비해 강수량이 약 150mm 적은 실정이다.

그러나 체감되는 가을 가뭄과 달리 기상청은 ‘가뭄’이라고까지 규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일부 지역이 급수차에 의존하는 등 식수난을 겪고 있지만 현재까지 각 지역 댐 저수량이 평년의 50∼60% 수준을 유지해 위급 상황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문제는 내년 봄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가을, 겨울철에는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특별히 많은 비나 폭설이 내리지 않는다면 내년 봄에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기상청은 이번 주말 전국에 비가 내리겠지만 건조한 날씨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 종합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저수지 10개중 3개 물 반 토사 반▼

토사 퇴적률이 50% 이상인 저수지 현황
토사 퇴적률저수지(개)
90% 이상35
80∼90%88
70∼80%96
60∼70%116
50∼60%155
토사 퇴적률=(최초 저수량-현재저수량)÷최초저수량×100 2005년 12월 현재. 자료: 한국농촌공사

전국 저수지 10개 중 3개가 총저수용량의 50% 이상 쌓인 토사 때문에 저수지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17일 공개한 한국농촌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저수지 182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90개 저수지의 토사 퇴적률이 50%를 넘었다. 토사 퇴적률이 100%로 물이 전혀 없는 저수지 2곳을 포함해 토사 퇴적률이 90% 이상인 저수지가 35개나 됐다.

토사 퇴적률은 저수지에 쌓인 토사가 총저수용량의 얼마나 되느냐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토사 퇴적률이 높을수록 저수지의 수용 능력이 떨어져 범람하기 쉽고, 제때 쓸 수 있는 농업용수가 적어진다.

김 의원이 분석한 결과 실제로 토사가 많이 쌓인 상당수 저수지가 7월 집중호우 때 범람했다. 수해가 발생한 경기 안성시 오촌저수지와 경북 포항시 당곡저수지의 토사 퇴적률은 각각 96%, 76%였다.

김 의원은 “정부가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수지에 쌓인 흙을 파내는 작업에 1780억 원을 들였지만 준설 대상이 주먹구구로 선정돼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해가 발생한 오촌저수지는 한번도 준설하지 않은 반면 토사 퇴적률이 3%인 경기 안성시 마둔저수지는 3억8000만 원을 들여 3차례나 준설작업을 했다는 것.

이에 대해 한국농촌공사 측은 “처음으로 토사 퇴적률을 조사한 만큼 그 결과에 따라 시급한 곳부터 준설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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