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과학기술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교양과목은 지금도 있다. 인문 사회계에서 개설하고 있는 ‘과학과 철학’ ‘과학사’ ‘과학과 사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목은 인문 사회 전공 교과목의 내용을 다소 쉽게 만든 것이어서 정작 이공계 학생의 지적 배경을 고려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한양대 공대 강성군 학장(56)과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이상욱 교수(34)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등 공대 중심으로 발전한 대학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지난 2년간 새 과목 개설을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으며 최근 교과 진행에 사용할 교재까지 완성했다.
김동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홍성욱 토론토대 교수, 김용헌 한양대 교수 등이 필진으로 참여한 새 교재는 기존의 과학철학 교재와 달리 사례 연구를 통한 현대 과학기술의 이해에 초점을 맞춰 ‘거대과학:입자 가속기 건설을 중심으로’ ‘한국 우두법의 정치학’ ‘파놉티콘과 네트워크 사회’ ‘안락사와 장기이식’ ‘말라리아와 질병의 문화사’ ‘유럽의 팽창과 자연사’ ‘전쟁과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강성군 학장은 “1950년대 이래 미국의 여러 대학은 과학기술의 방법론을 그 역사적 전개와 개념적 발전에 초점을 맞춰 전교생을 대상으로 강의했다”며 “하버드대학에서 코난트 총장의 발의로 시작한 이런 성격의 교양 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유명한데 ‘과학혁명의 구조’로 수많은 학문 분야에 영향을 끼친 토머스 쿤도 이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지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핵심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 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이상욱 교수는 “19세기만 해도 전기 대량 공급의 방식으로 교류와 직류를 둘러싸고 큰 논쟁이 벌어졌는데 미국의 에디슨은 내심 교류를 원하면서 당시 기술 수준 때문에 직류를 미는 오류를 범했다”며 “이공계 학생들은 과학을 정치 경제 사회적 콘텍스트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IMT 2000 방식 등 기술표준 선택과 관련한 현대적 쟁점에 대해 유익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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