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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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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50〉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50〉

    (…)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크게 다르랴,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옹다옹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매화꽃 피고 지기 어언 십년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기껏 떠났던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아니, 당초 집을 떠난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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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뱀이 된 아버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9〉

    뱀이 된 아버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9〉

    (전략) 아버지는 나를 잠깐 보더니 처제,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하품을 …

    •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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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8〉

    호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8〉

    새소리는 어디서 왔을까 새도 숲도 없는 이곳에 새소리가 들려왔다면 내 안에서 네 안에서 그도 아니면 신이 있다면 새소리로 왔을까 늪 같은 잠 속에서 사람들을 건져내고 아침이면 문가로 달아나는 반복되는 장난 은빛 깃털만이 신의 화답으로 놓인다면 그도 신이라 부를까 내가 새소리를 듣는…

    •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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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7〉

    혼밥[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7〉

    낯선 사람들끼리 벽을 보고 앉아 밥을 먹는 집 부담없이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목로 밥집이 있다 혼자 먹는 밥이 서럽고 외로운 사람들이 막막한 벽과 겸상하러 찾아드는 곳 밥을 기다리며 누군가 곡진하게 써내려갔을 메모 하나를 읽는다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구나, 혼자 …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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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6〉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6〉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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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습니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5〉

    그렇습니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5〉

    응, 듣고 있어 그녀가 그 사람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라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입술을 조금씩 움직여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그 사람은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다시 그 이야기를 했고 한참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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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4〉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4〉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나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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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3〉

    목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3〉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애써 지우려 하면 오히려 음각으로 새겨지는 그 이름을 연꽃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한때 내 그리움은 겨울 목련처럼 앙상하였으나 치통처럼 저리 다시 꽃 돋는 것이니그 이름이 하 맑아 그대로 둘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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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청산옥에서 12[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2〉

    사랑-청산옥에서 12[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2〉

    살 찢은 칼이 칼끝을 숙이며 정말 미안해하며 제가 낸 상처를 들여다보네. 칼에 찢긴 상처가 괜찮다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칼을 내다보네. 윤제림(1960∼ )사춘기 딸아이는 좀 무섭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상처는 받는다. 그래도 가끔 “엄마 미안해”라는 말을 들으면…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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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 동안의 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1〉

    낮 동안의 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1〉

    오이 농사를 짓는 동호씨가 날마다 문학관을 찾아온다 어떤 날은 한아름 백오이를 따 와서 상큼한 냄새를 책 사이에 풀어놓고 간다 문학관은 날마다 그 품새 그 자리 한 글자도 자라지 않는다 햇볕이 나고 따뜻해지면 오이 자라는 속도가 두배 세배 빨라지고 화색이 도는 동호씨는 더 많…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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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주례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0〉

    어떤 주례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40〉

    주례를 서기 위해 과거를 깨끗이 닦아 봉투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동 같다 그렇다, 부부란…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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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이꽃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9〉

    냉이꽃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9〉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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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가 별이라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8〉

    그대가 별이라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8〉

    그대가 별이라면저는 그대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습니다그대가 노을이라면 저는 그대 뒷모습을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습니다그대가 나무라면저는 그대의 발등에 덮인흙이고자 합니다오, 그대가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라면저는 그대가 앉아 쉬는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습니다―…

    •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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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여름, 가을, 겨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7〉

    봄, 여름, 가을, 겨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7〉

    새가 날아갈 때 당신의 숲이 흔들린다 노래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봄이 지나가고 벌서듯이 새를 기다리며 여름이 지나가고 새가 오지 않자 새를 잊은 척 기다리며 가을이 지나가고 그래도 새가 오지 않자 기도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겨울이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무수히 지나가고…

    •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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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께서 부르시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6〉

    임께서 부르시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6〉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 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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