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각국 외교장관 중엔 회담 뒤 상대국과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는 이들이 많다. 이후 메신저를 통해 바로바로 의견을 교환한다.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그중 한 명이다. 급히 확인해야 할 각국 입장이나 정보가 있으면 비행기에서, 차로 이동 중에도 상대국과…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33년이 흘렀으나, 제도가 미처 성숙되기도 전에 좌초될 위험에 놓이게 됐다. 자치 실현에는 물적 기반 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우리나라 지방재정은 오랫동안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세입에서 자체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재정자립도는…
직무 태만, 소극 행정, 지시 사항 불이행, 친절·공정의 의무 위반…. 일반 공무원들은 정도가 심하고 고의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런 다양한 사유로 파면될 수 있다. 기소 여부나 재판 결과와 상관 없이 징계위원회에서 심의해서 결정하게 된다. 검사는 다르다. 징계위원회에서 정할 수 있는…
전국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 40곳이 내년도 모집 요강을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간 의료계가 ‘파업 카드’를 살짝 꺼내 들기만 해도 무산됐던 의대 증원이 27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정말 의대 증원에 성공한 것일까. “조속히 논의” “우선적 추진” 같은…
‘전세사기’는 피해자 8명을 죽음까지 내몰고 조 단위의 보증사고로 이어진 역대 최악의 ‘부동산 실패’다. 피해자 1만7060명 중 73.7%가 20, 30대 청년들이다. 그 충격으로 서울 등 수도권에서 빌라 전세를 꺼리는 ‘빌라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우리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제대로 된 결정을 안 하는 정치인들, 심판해야 할 거 같아요.” 21대 국회에서 끝내 국민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자, 한 18세 고교생은 이처럼 말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청소년들에게 국민연금 개편에…
2021년 11월 6일. 미국 공화당 프레드 업턴 하원의원(71)의 사무실에 음성메시지가 쏟아졌다. “빌어먹을 배신자. 당신이 죽으면 좋겠어. 가족까지 모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업턴은 전날 밤 하원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야심작인 ‘인프라법’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13명 …
지난달 총선이 끝나고 세종시 관가에서는 일제히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3분의 1밖에 안 되는 여당 의석으로 어떻게 국정을 꾸려가야 하나.”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수습하듯,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들은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무기를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극단적 여소…
‘더 예쁜 후보가 뽑힐 겁니다.’ 멕시코 대학교수가 대선을 앞두고 한 자조적인 체념이다. 식민통치를 겪은 멕시코는 2000년 개헌을 했고, 그 후 6년 단임제로 대통령을 4명 선출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정치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다음 주 치러지는 대선, 총선 동시선거의 예비 후보…
검사들끼리 쓰는 은어 중에 ‘불장’이라는 것이 있다. 불기소장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검사는 수사를 마무리할 때 공소를 제기하면 공소장을 쓰고 법원에 제출한다. 반대로 기소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할 땐 불기소 이유를 적은 문서를 남겨야 한다. 흔히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어…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기존 부처로는 곤란하다고 해 경제기획원을 만들고 고도성장을 이끌었다”며 “저출생대응기획부(저출생부)를 설치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임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도 긍정적이어서 22대 국회에…
한국 정치는 퇴보하고 있고 위기다. 이 주장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한국만큼 강한 국가도 없다. 정치만 3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 문제는 그다음 질문에 있다. 한국 정치를 위기에 빠뜨린 책임은 어디…
정부는 작년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 사업에 대해 주택을 사들이는 가격을 ‘원가 이하’로 정했다가 올 2월 ‘합리적 시장가격’으로 바꿨다. 매입임대는 LH가 주택을 직접 사들여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저소득층 등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1년 만에 기준을 되돌린 …
이원석 검찰총장은 제주지검장이던 2022년 4월 주요 일간지에 6차례 연달아 기고를 한 적이 있다. 현직 검사장이 신문 오피니언면에 직접, 그것도 여러 매체에 등장한 건 이례적이었다. 그의 칼럼은 당시 여당이 한창 밀어붙이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입법에 반대하는 글이었…
1884년 여름, 표류 중이던 구명정에서 식인 사건이 일어났다. 구명정에는 선장과 1등 항해사, 갑판원, 잡역부로 일하던 17세 소년 리처드 파커까지 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통조림 두 개를 챙겨 왔을 뿐, 식수조차 없었다. 표류 19일째, 선원들은 파커를 죽여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