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 검사장이 어제 전국 최대 규모의 서울중앙지검 수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검사장은 첫 출근길에 야권에서 자신을 ‘친윤(친윤석열) 검사’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묻자 “정치권에서 쓰는 용어에 동의할 수 없다. 서울지검에 23년 전에 초임 검사로 부임했고, 23년 동안 검사 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검사장의 이런 생각은 어제 오후 취임사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는 초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취임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검사 생활을 하면서 ‘내 방에 오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주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겁니다.
검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관장으로 인사 발령이 나면 취임사를 어떻게 쓸지부터 고민한다고 합니다. 전임 기관장들의 취임사를 보면서, 앞으로 함께 일할 직원들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고 합니다. 이 검사장도 자신에게 쏠린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서 아마 취임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스탠퍼드에서 LLM을 하고, 꼼꼼한 것으로 알려진 이 검사장은 모르긴 몰라도, 취임사를 지우고 고쳐 쓰고 다시 채우는 걸 반복했을 겁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배포한 A4용지 9장 분량의 취임사를 보면서 저는 이 문장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열심히 수사해서, 죄가 있으면 있다 하고, 죄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됩니다’. 이 앞 문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증거와 법리를 기초로 사안의 실체와 경중에 맞게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였습니다. 답안지에 쓸 땐 완벽한 답변일 수 있지만 이걸 실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검사의 길입니다.
이 검사장 앞에는 지금 현직 대통령의 부인과 관련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비슷한 무게감을 갖고 출발한 검사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달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의 굵직한 의혹 사건을 처리해야 했던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배제하고 진실만을 생각해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있는 것은 있다 하고…’의 다짐과 그 이후의 검찰 수사 결과는 국민의 신뢰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법조계에서 합니다. 수사의 한계, 외부 정치적 상황 등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없다고 했던 것이 정권이 바뀐 뒤에 있는 것으로 결론이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검사장은 무엇을 있다고 할까요, 또 어떤 것이 없다고 할까요. 이 검사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의 모든 행동을, 앞으로 국민들이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