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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

1년

끝나지 않는 고통

찢어진 종이 이미지

지난해 2월 인천 미추홀구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불거졌다. 당시 파악된 피해 주택만 2000채가 넘는다. 아까운 생명이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전세사기가 서민과 청년들의 주거 현실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2021년 6월~2024년 2월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 전월세 거래 약 64만 8000건을 전수 분석했다. 전세사기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도 입수했다.

전세사기로 ‘빌라포비아’가 확산되며 서민들에게 저렴한 주거공간을 공급하던 빌라 전세 시장은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수요가 월세로 쏠리며 주거비 부담도 커졌다. 기존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 새로운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들 피해자는 물론 일반 서민과 청년들에게도 전세사기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2023년 전세사기 피해액,
최소 4조3347억 원

동아일보가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전국 총 1만9350건이었다. 2022년 5443건의 4배 수준이다. 사고액은 총 4조3347억 원이다. 세입자들이 1채당 평균 2억 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HUG가 집주인 대신 갚아줬다는 의미다. 이는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피해자들을 감안하면 전체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핀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시군구별 사고 현황

그래프 배경

화살표 피해는 주로 수도권에 집중됐다. 경기 부천시가 177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인천 미추홀구(1619건) 부평구(1586건) 서구(1301건), 서울 강서구(1560건) 순이었다. 모두 지난해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이다. 집값이 비싼 수도권에서 사회초년생이나 대학생,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 전세를 찾는 경우가 많다. 전세사기는 바로 이들의 보증금을 노리고 벌어졌다.

핀수도권에 집중된 전세사기 피해

찢어진 종이 이미지

전세사기가 낳은
'주거비 월 100만 원 시대'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 씨(35)는 두 차례나 전세사기로 홍역을 치렀다. 양천구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뒤 강서구로 이사해 신축 빌라에 입주했는데, 만기에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못 돌려준다’고 선언한 것. 다행히 두번 모두 HUG 보증보험에 가입한 상태여서 보증금은 건졌다. 하지만 박 씨는 “월세는 감당이 안 되고 전세는 불안하다. 다음 집을 구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전세사기 피해를 겪은 이들은 하나같이 ‘전세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말한다. 피해자 중에는 등기부등본 확인, 전입신고 등 필요한 조치를 했는데도 사기를 당한 경우가 많다. ‘대비해도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전세 기피 현상은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전세 보증금이 높은 아파트로 갈 수 없는 형편의 청년이나 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월세살이’ 뿐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분석한 결과 전세사기 사건 이후인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거래된 서울 전용 40㎡ 이하 빌라의 평균 월세는 85만 원이었다. 전세사기 직전 1년(74만6000원)과 비교해 13.9% 올랐다. 2021년의 평균 월세가 67만8000만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사기 이후 월세가 더 가파르게 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핀서울 구별 전용 40㎡ 이하 월세 현황

화살표 전세사기 전후인 2022년과 2023년을 비교해 월세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성동구(28.6%) 영등포구(25.6%) 양천구(21.4%) 동작구(19.5%) 강서구(18.2%) 순이었다. 주로 출퇴근이 편리해 젊은 층이 선호하면서, 빌라가 밀집된 지역이다. 자치구별로 2022년과 2023년 평균 월세 가격을 화살표 차트(아래)로 나타내봤더니 차이가 더 확연히 드러났다.

그래프 배경

2022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의 평균 관리비는 각각 17만8000원, 16만4000원이었다. 전용 40㎡ 빌라는 통상 원룸이나 투룸 규모가 대부분이다. 이제 서울에서 원룸, 투룸 빌라에 살기 위해서는 월세에 관리비를 더해 평균 월 100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거비 지출이 늘어나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줄어들게 된다. 돈을 모아 자산을 형성해나가야 하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에게 전세사기가 낳은 ‘주거비 월 100만 원 시대’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전세사기 1년, 그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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