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990년대 환경 문제로 포기한 희토류 산업이 중국의 핵심 ‘산업 무기’이자 미국의 ‘아킬레스건’이 돼서 돌아왔다. 극소량을 쓰지만, 희토류가 없으면 생산이 중단된다는 점을 앞세워 중국이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의 대응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다.
22일 국내 원자재시장 분석기관 코리아피디에스에 따르면 전 세계 희토류 정제의 91%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희토류 채굴 비중은 69% 정도지만, 높은 제련·분리 기술로 인해 중국이 전체 희토류 제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1%에 이른다. 특히 희토류 중 핵심 광물로 꼽히는 네오디뮴(NdFeB) 영구자석의 중국 생산 비중은 93%다. 이 광물은 전기차 모터를 비롯해 반도체 장비, 방산 산업 등에 활용된다.
희토류는 일반 금속 대비 높은 전도성과 자기성을 바탕으로 자동차, 방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최첨단 산업에서 쓰인다. 사용하는 양은 작지만 공급이 부족하면 완제품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석유’, ‘첨단산업 비타민’ 등으로 불린다.
전기차 모터에 들어가는 네오디뮴 영구자석은 2t 완성차에 1∼5kg 정도 쓰이지만, 공급이 중단되면 완성차 생산이 불가능하다. 희토류가 쓰이는 분야는 모두 비슷하다. 사실상 글로벌 첨단산업의 존망이 희토류에 달린 셈이다.
중국 이전 희토류 강국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 규제 강화와 비용 절감 이슈가 겹쳐 사업을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희토류 제련, 분리를 위해서는 황산과 염산 등 화학 약품을 써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부산물들이 심각한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환경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중국은 다수의 희토류 기업을 인수하면서 단기간에 희토류 정제 기술을 손에 넣었다. 업계에서는 1995년 미국 GM이 영구 자석 관련 최고 기술을 보유한 희토류 자회사 매그네퀜치를 중국에 넘긴 것이 중국의 희토류 영향력을 키운 결정적인 계기로 본다.
중국은 이후 30여 년간 연구개발(R&D)을 통해 희토류 관련 노하우를 쌓았다. 여기에 ‘채굴-제련-가공’으로 이어지는 희토류 산업을 수직 계열화하면서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미국이 중국이 독점한 글로벌 희토류 시장에 불안감을 느낀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이후 관련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지원에 나섰지만, 중국 정부의 대량 생산 체제 구축으로 인한 가격 인하 정책을 견뎌내지 못하고 정리 절차를 겪게 됐다.
세계 여러 국가는 중국이 2010년 일본과의 영토 분쟁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협상 무기로 꺼내면서 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나섰다. 희토류 매장량 2위 국가인 브라질(2100만 t) 등을 통한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지만, 제련·분리 기술 부족으로 인해 생산 성과는 아직 미미한 정도다. 도시 광산 채굴로 희토류 수급에 나서겠다는 움직임도 있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손양림 코리아피디에스 수석연구원은 “10년이 넘도록 전 세계 국가들이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며 “환경 이슈, 공급 가격 등을 감안했을 때 장기 비축 외에 다른 방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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