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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 왜 힘빠지나

Posted September. 07, 200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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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는 2002년 출범 이후 국내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나름대로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런데도 권고 수용률이 떨어지고 인권위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인권위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의 당위성에만 경도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적인 권고를 많이 냈다는 지적이 있다. 시시콜콜한 지엽적인 사안에까지 시어머니처럼 권고를 하다 보니 상대가 승복하지 않는 현상이 많다는 것이다.

또 정권 교체로 인한 분위기 변화다. 참여정부 때는 인권위에 힘을 실어주고 코드 인사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말발이 섰다. 정부 기관들은 불만이 있어도 정권의 눈치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들인 사안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권위의 입지가 좁아졌다. 정부 기관이나 기업 등이 힘 빠진 인권위 권고를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비현실적인 권고로 외면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대한항공이 기내 승무원 공개채용 조건에 남성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남성에 대한 성차별이라며 채용관행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현재까지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기존 채용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내 다른 직종의 남자사원에게 사내공모를 통해 기내 승무원이 될 기회를 주고 있다고 해명했는데도 인권위는 권고를 강행했다며 기내 승무원으로 여성을 채용하는 항공사 인력운용상의 특성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인권위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하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체들도 인권위의 지나친 개입과 경직된 태도만큼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17일 노숙인 등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명의도용 피해 예방대책을 내놨다. 명의도용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려고 노숙인이나 쪽방촌 거주자 등의 명의로 된 금융대출, 휴대전화 개설, 사업자 등록, 차량등록 등 주요 신용서비스를 제한하는 대책이었다. 이에 대해 인권위가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심화의 소지가 있다며 인권침해 의견을 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7일 서울시는 즉각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의례적으로 인권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관련 대책을 계속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외부 지적에 대해 인권위의 한 상임위원은 인권위가 현실을 모른다는 외부 비판을 잘 알지만 각종 제도나 정책을 인권 최우선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원칙을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정작 인권위가 소명 기회를 줄 때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가 권고가 나간 뒤에 뒤늦게 불만을 제기하는 기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 됐나

인권위의 인권정책 관련 권고 수용률은 2006년 80%에서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59%까지 떨어졌다. 인권위와 코드를 공유했던 노무현 정부의 레임덕이 인권위 권고 수용률에도 반영됐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종교적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은 노무현 정부 때 인권위 권고가 수용되는 쪽으로 잡혔다가 새 정부 들어 반대로 돌아선 대표적 사례다. 2007년 9월 대체복무제 도입방침을 밝혔던 국방부는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제도 도입을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는 인권위 권고를 무시하면 국정 방침을 거역하는 것으로 인식돼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다고 말했다.

서강대 임지봉 교수(법학)는 새 정부 들어 인권위 조직이 축소되고 위원장 교체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 기구들도 예전처럼 인권위 눈치를 보는 현상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권고의 보편타당성 높여야

인권위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공익이나 다른 권리를 두루 살피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지난해 6월 인권위는 치매 노인이나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치매 노인의 옷에 탈부착할 수 있는 인식표를 나눠주려던 보건복지가족부의 정책에 대해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과 범죄 악용 가능성을 들어 인권침해 의견을 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름,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는 모두 코드화해 인식표에 드러나지도 않고 실종노인전문기관 등에서 관리해 인권침해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인권침해 가능성보다 제도시행을 통해 얻는 이득이 훨씬 큰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복지부는 현재 해당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숭실대 강경근 교수(법학)는 참여정부 시절 인권위 권고의 힘은 권고 자체의 타당성보다는 정권의 코드에 기댄 측면이 적지 않았다며 더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있는 권고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정열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