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5일 이경식 경제부총리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들어서자 야당인 평민당 김 모 의원이 이 매국노, 이완용 같은 놈이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이 부총리는 매국노 소리에 얼마나 분했던지 그날 저녁 사석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만나면 그 자를 두들겨 패줄 것이라고 말했다. 매국노 발언은 우루과이라운드(UR) 쌀 협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쌀 시장 10년간 개방 유예, 10년 후 재협상은 UR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남 강진완도 출신 열린우리당 이영호 의원이 한미 FTA 찬성 소신을 밝혔다가 지역 농민회원들로부터 매국노 소리를 듣고 있다. 을사오적()을 떠올리게 하는 매국노라는 욕은 상대에게 말 할 수 없는 치욕감을 안긴다. 공직자나 정치인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평평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세계화, 개방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한미 FTA도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다. 반대야 할 수 있지만 이를 놓고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반미()감정의 표출이라면 더 위험하다. 미국외교협회(CFR) 줄리아 스웨이그 이사가 분류한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만도 8개나 된다. 반미() 숭미() 혐미() 찬미() 연미() 용미() 항미() 폄미()가 그것인데 이중 어느 것이 과연 매국에 가까울까. 극단적인 좌파의 눈으로 보면 연미, 용미조차도 매국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 이 시대의 애국()일 터이다.
이 정권에서 장관, 당의장, 원내대표를 지낸 실력자들이 줄줄이 FTA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대권 주자로 꼽히는 김근태, 천정배 의원은 단식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이다. 반대를 하려면 현직에 있을 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도 한미 FTA를 매국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서일까. 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진짜 매국적이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