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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의 기억은 지워라 강한 일본이 팔린다

패전의 기억은 지워라 강한 일본이 팔린다

Posted August. 17, 2005 06:27,   

日本語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전승국인 미국과 패전국인 일본은 현재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GDP는 2004년 기준 4조6234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GNI)은 9위(3만7180달러)다. 외환보유액은 6월 말 현재 8393억 달러로 부동의 세계 1위다.

일본은 한국전쟁에서 챙긴 현금을 종자돈 삼아 1950년대 개별 기업이 경제 재건을 이끄는 기업의 시대로 줄달음쳤다. 항복 선언을 한 지 불과 10년 만인 1956년 일본 정부는 경제백서를 통해 이제 더는 전후()가 아니다고 대내외에 선언했다.

관료 주도의 경제 운용, 기업과 은행의 유착에 가까운 자금공급 체계, 종신고용제 및 회사에 대한 충성 요구 등 일본 경제를 특징짓는 틀도 이 시기에 갖춰졌다. 일본의 경제성장 경험은 한국, 대만 등 후발 인접국들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60년대와 돈 버는 재미에 빠진 1970년대, 일본에 역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과거사에 대한 부정과 외부 지향의 충동은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와 함께 찾아 왔다.

젊은 세대의 역사 불감증

현재 일본 인구의 70% 이상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른바 전후세대다. 10, 20대의 젊은 층에 전쟁은 부모 세대의 회고담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위대한 일본의 재현이라는 콘셉트는 상업문화 제작자들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원자폭탄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는 올 4월 문을 연 야마토() 박물관이 인기다. 8일 50만 명째 입장객을 맞이한 이 박물관 매점에서는 야마토 과자, 야마토 젤리가 불티나게 팔린다. 1945년 4월 전함 야마토가 옛 일본군 병력 3000여 명과 함께 동중국해에 수장된 역사는 이미 잊혀진 과거일 뿐이다.

극장가에서는 가상적국의 음모에 맞서 자위대 요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다룬 전쟁영화 망국의 이지스함이 젊은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도 대중 매체 보도로 유명해지면서 호기심 많은 일본인들에게 가족 동반 나들이 터로 변질됐다.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일본의 전쟁 도발이 잘못이었다고 대답한 3060대는 4346%였다. 그 반면 20대는 36%로 가장 낮았다. 잘 모른다(34%) 어쩔 수 없었던 전쟁(29%)이라는 응답도 다른 세대보다 많았다.

일본 어디로 가는가

도쿄 외교 소식통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경화를 주도한 인물로 비판받지만 자민당에서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는 면면을 보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상 등은 강한 일본 할 말은 하는 일본을 내세우며 일본이 더는 과거 역사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앞세대에서 벌어진 전쟁의 책임을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 묻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들은 일본도 다른 나라와 똑같은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며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재무장과 자위대의 군비 확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잠재적 위협을 이유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미사일방어(MD) 체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해외로 넓히는 데 성공했다. 누가 일본 총리가 되든 8월 15일엔 반드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해야 한다는 이들에게 전범은 나라를 위해 애쓰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선조일 뿐이다.

자민당이 자위대의 자위군() 격상, 해외에서의 무력행사 허용, 전수(수비에 전념하는 개념) 방위 원칙의 포기를 골자로 한 헌법개정안 초안을 확정한 것도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방위청의 성() 승격과 국방 의무 조항의 신설 등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자민당 내 일부 우익 사이에서는 핵 무장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 정계가 우경화로 치달으면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담화의 정신은 퇴색했다. 중의원 결의안과 고이즈미 총리의 전후 60주년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보다 후퇴한 것은 일본의 역사인식이 지난 10년간 뒷걸음질쳤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접국의 걱정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일본이 걸어갈 60년은 과거 60년과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원재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