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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그가 뛰면 기적을 만든다

Posted June. 17, 2005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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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를 지키던 8500여 명의 관중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있었다. 후반 44분에 스코어는 0-1.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태극전사들과 붉은악마를 비롯해 네덜란드와 독일 지역 교민들로 구성된 200여 명의 한국 응원단에 포기란 없었다. 태극전사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한국 응원단은 필승을 염원하며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기적의 3분 드라마는 이렇게 탄생했다.

16일 네덜란드 에멘 경기장에서 열린 2005 세계청소년(20세 이하)축구선수권대회 F조 한국-나이지리아의 경기. 한국이 0-1로 뒤지다 종료 직전 3분 동안 2골을 몰아쳐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지구촌을 열광시켰다.

기적의 물꼬는 축구 천재 박주영(20FC서울)이 텄다. 박주영은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우크라이나, 쿠웨이트와의 원정 경기를 모두 소화하고 건너와 체력적, 심리적으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후반 26분 상대 수비수 케네디 치누와 공중볼을 다투다 그라운드에 떨어지며 팔을 잘못 짚는 바람에 왼쪽 팔꿈치가 빠지는 부상을 했다.

하지만 그는 간단한 응급조치만 받고 뛰는 굳은 의지를 보였고 결국 후반 44분 멋진 프리킥으로 천금의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런 박주영의 활약도 동료들의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후반 2분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주위 선수들을 돌아봤는데 다들 웃고 있더라고요.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때부터 힘이 불끈 솟아올랐어요. 박주영은 팔꿈치는 가끔 빠졌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어요. 브라질전에서도 꼭 승리할 겁니다라며 투지를 보였다.

후반 인저리 타임 때 결승골을 뽑은 백지훈(20FC서울)은 박주영의 동점골이 없었으면 제 결승골도 없었을 겁니다. 모든 선수가 필승을 다짐해 합심한 결과입니다라며 역시 동료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박성화 감독은 강호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게 역전승의 원동력이었다. 선수들이 너무 대견스럽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이마누엘 마라다스 국제축구연맹(FIFA) 언론 담당관은 정말 믿기 어려운 승리였다며 불굴의 사자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3분 새 2골을 터뜨린 것은 전형적인 아시아 정신(typical Asian spirit)의 승리라고 말했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한국의 4강 신화를 지켜봤다는 마라다스 담당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 선수들의 투지가 팬들을 사로잡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2002 월드컵 때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물결 한국 축구의 매운맛에 지구촌 축구팬들이 다시 한번 신선한 충격에 휩싸인 현장이었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