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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구절리

Posted April. 07, 2004 22:21,   

세상이야 늘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정선선 꼬마열차가 그렇다.

객차 한 칸 달랑 붙이고 정선 산골짝의 증산과 구절리 두 역을 잇는 길지 않은 단선 철로(45.9km)를 하루 세 번 오가는 이 열차. 탄광경기 좋아 구절리가 사람들로 북적일 때만 해도 황금노선 열차였지만 폐광되어 조용한 산골마을로 되돌아온 후에는 적자 노선으로 전락해 천덕꾸러기며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외환위기를 겪는 동안 불어닥친 답사여행 붐을 타고 꼬마열차가 사람들 눈에 다시 띈 후에는 이 열차를 찾는 이도 늘고 있으니 더 이상 구박할 일도 아닌 듯하다. 정선 아라리 가락이 태어난 아우라지(송천과 골지천 두 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뜻)를 객차 한 칸 달랑 달고 건너다니는 진귀한 열차를 타보기 위함이다.

2000년 11월 가을바람 스산하던 어느 날. 전국의 허다한 철도 노선 중 유일하게 이 정선선을 운행하던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철처럼 마주보고 앉는 초록빛 융단의 좌석이 설치된 낡은 객차. 한겨울이면 한가운데 시커먼 석탄난로를 피워 난방을 할 만큼 허름했다.

장날이면 손자 용돈벌이로 산나물이며 무말랭이를 보자기에 고이 싸 아름아름 들고 정선 장에 내다 팔러 나가던 깊은 주름살의 그 할머니, 하교길이면 기차에 올라 의자에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구석에 모여앉아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떠들며 정겨운 소음 만들던 그 아이들.

그날 마지막으로 구절리역 떠나 증산역으로 향하던 낡고 허름한 비둘기호 객차에서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매정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 열차, 이 풍경 다시는 볼 수 없으려니 하면서.

그 후 3년 여. 이번에는 고속철도 바람이 엉뚱하게도 퇴역한 비둘기호 대신 이 철로의 주인이 된 통일호 열차마저 역사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4월 1일 고속철도 개통과 통일호 열차 퇴역이 동시상영된 것이다. 슬로 푸드(Slow food)다 슬로 라이프(Slow life)다 해서 요즘 세상은 느림의 철학을 중시하는 데 교통수단만큼은 그 반대다. 느린 놈은 죄다 강제 퇴출시키고 재빠른 날쌘돌이만 대접해 준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정선선의 이 통일호 열차는 속속익선()의 고속철도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재하니까. 그렇다고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호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대신 통근열차라는 어쭙잖은 명칭으로 바뀌었다. 기본요금도 100원 인상(1100원1200원)됐다. 또 오전 2시15분 증산역을 출발해 정선역까지만 왕복하던 새벽열차의 운행이 중단됐다. 그러나 증산역과 구절리역을 오가는 기존 열차는 종전과 변함없이 하루 6회(3왕복) 운행 중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선선 꼬마열차가 언제까지 용평리조트에서 흘러내리는 송천과 태백의 한강발원지에서 내려오는 골지천과 합쳐 조양강을 이루는 아우라지 물 건너 정선의 숨겨진 속살을 헤치며 구절리역까지 오갈지는 알 수 없다. 정선군이 추진 중인 레일바이크(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그 추진력으로 철로를 달리도록 고안한 것으로 구간은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 사이) 운행이 허가되면 통근열차 운행구간 역시 증산역과 아우라지역 사이로만 국한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빠르면 올 가을일 수도 있고.

그러니 정선선 꼬마열차 아직 타보지 못하신 분, 아우라지강 건너 개울가를 느릿느릿 달리는 한 칸 열차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 사라진 뒤 후회하지 말고 서둘러 타 볼 일이다. 요즘은 카페열차로 개조돼 창밖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정선장날(날짜의 끝자리가 2와 7인 날)을 기억했다가 시골장도 보고 꼬마열차도 타보자.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