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한 각오로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되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9일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중동 리스크가 금융·실물 경제로 본격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며 정부에 신속 대응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이번 주부터 유가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는 것은 물론 유류세 인하 확대와 유류가격 지원 방안 등을 보고했다. 정부는 미-이란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기름값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도 열어놨다.
● 유류 최고가격제 이번 주부터 시행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날 회의 후 브리핑에서 “정부는 정유사나 주유소가 가격을 올릴 때는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리는 비대칭성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면서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이번 주 내에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고시 제정 등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도 휘발유·경유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 가격 지정제를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석유사업법은 정부가 유가 급등 시 정유업체, 판매업체 등에 최고판매가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97년 유가 자율화 이후 30년 만에 휘발유·경유 등에 대한 최고가격 지정제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김 실장은 “시행되면 기본적으로 2주 주기로 설계를 하려 한다”며 “이 (중동) 상황이 발생하기 이전 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최고로 설정하면 아마 첫 번째 최고 가격은 지금 시중에서 소비자들이 맞닥뜨린 가격보다는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하는 조치나 유류 소비자에 대한 직접 지원 조치 등 유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 완화 방안에 대해 세밀하게 검토해 볼 것도 지시했다.
청와대는 이른바 ‘기름값 추경’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뒀다. 김 실장은 추경 관련 질의에 “직접 타격을 받는 산업들도, 소비자도 있고 여러가지 시장 조치를 포함해 대한민국 경제가 피해를 입지 않게 잘 헤쳐 나가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됐다”면서 “거기에 따라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상황이 정해진 (예산) 한도 내에서 한다고 하면 최고가격제를 못하는 것”이라며 “10일 사이에 필요한 재원들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악용해서 부당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엄단하라”는 점도 언급했다. 김 실장은 “실효성 있는 제도 시행을 위해 시장에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는 없는지, 담합이나 세금 탈루 등 시장 교란이나 불법 행위는 없는지 국세청 등을 중심으로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며 “정유사 담합 여부 및 주유소 가격 조사, 세무 검증, 가짜석유 적발을 위한 현장 점검 등에 관계기관이 적극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산유국에서 2000만 배럴 우선 구매권 행사
김 실장은 “산유국과 공동 비축한 물량인 2000만 배럴도 우선 구매권을 행사하면 우리가 인수할 수 있다”면서 “석유공사의 해외 생산분도 국내로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영향을 받는 원유 도입량은 하루 170만 배럴 수준인데 한국이 비축한 석유량은 1억9000만 배럴로 208일 지속 가능한 수준이다. 김 실장은 “전략적 협력 관계에 있는 나라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물량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중동 외 지역으로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혈맥인 금융,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시기 바란다”고도 했다. 이어 5일 임시국무회의에서 언급한 100조 원 규모로 마련된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적극 확대하라며 “정부와 중앙은행 차원의 추가 조치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국채 시장 안정에는 중앙은행이 많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