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은 넘치는데 그 힘을 담을 그릇이 없는 시대네요.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투자가 보수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답답함을 느낍니다.”
20일 서울 마포구 CJ ENM 사옥에서 만난 남궁선 감독(46)은 ‘구조적 위기를 맞닥뜨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작금의 영화계 현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반응이 좋았던 영화들은 대개 감독이 원하는 바가 뚜렷했던 영화”라며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궁 감독은 14일 개봉한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의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30주년과 CJ ENM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영화는 한예종 영상원을 거쳐 간 감독 30명이 각각 3분 분량으로 만든 30개의 이야기를 엮었다. 남궁 감독이 선보인 단편 ‘우리가 죽기 전에’는 영화감독, 촬영감독 등의 대화를 통해 영화 산업을 둘러싼 염세적인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감독이 독립영화에 이어 넷플릭스 ‘고백의 역사’를 연출하며 느낀 여러 생각이 담겼다. 남궁 감독은 “영화라는 게 난해한 퍼즐 같아서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며 “하지만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진자운동’이겠거니 생각하며 버틴다”고 했다.
‘당신이 영화를…’에 포함된 임선애 감독(48)의 단편 ‘껌이지’ 역시 영화 현장에 대한 자조 섞인 유머가 가득한 단편이다. 임 감독은 ‘69세’ ‘세기말의 사랑’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등을 연출해 부산국제영화제 등 다수 영화제에 초청받은 감독이다. 이번 단편은 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당시 씹고 있던 껌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날 함께 만난 임 감독은 “‘이야기를 만드는 게 껌 씹는 것처럼 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껌 취급 당했던 나의 연애사와 시나리오가 생각났다”고 했다.
두 감독이 연출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해 여름. 임 감독은 ‘실연당한 사람들을…’의 마지막 믹싱 작업 중이었고, 남궁 감독은 ‘고백의 역사’ 후반 작업을 막 끝낸 바쁜 시기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스태프를 꾸려 3∼4주간 제작에 나섰다. “단편의 묘미를 살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임선애)과 “단편 작업 자체가 고향 같은 느낌이 있다”(남궁선)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당신이 영화를…’은 두 감독 외에도 영화 ‘세계의 주인’의 윤가은, ‘만약에 우리’의 김도영, ‘연애 빠진 로맨스’의 정가영,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등 젊은 감독들과 신인 감독들이 제작에 참여해 이 시대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냈다.
임 감독도 영화를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을까.
“그만두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만둬야 하나?’ 하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갑작스레 임신이 됐을 때였습니다. 출산 후에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례가 많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제 배제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전히 절 보며 ‘오래 버텨 달라’고 당부하는 여성 영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태언 bebor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