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등을 놓고 양국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두 나라가 치열한 패권 전쟁에 돌입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비용으로 오픈AI의 ‘챗GPT’에 맞먹는 ‘R1’을 출시하며 전 세계 산업 및 금융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그간 AI를 포함한 정보기술(IT) 분야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중국에 첨단 AI용 반도체 등의 수출 규제를 실시했던 미국은 딥시크 열풍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저사양 AI용 반도체의 중국 수출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AI 개발에 필요한 최신형 반도체뿐만 아니라 그간 대중국 수출을 허용했던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반도체 ‘H20’에 대해서도 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AI 경쟁에서 중국의 기술 수준이 미국의 예상보다 앞서 있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구형 AI 반도체 ‘H800’만으로 만든 자사의 AI 모델 ‘R1’이 미국을 대표하는 오픈AI의 최신 모델 ‘o1’보다 성능은 더 뛰어나면서도 비용은 10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혀 전 세계 기술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일각에서는 딥시크의 비용 계산이 축소됐을 것이란 의문도 제기된다. 또 미국의 규제를 우회해 엔비디아의 신형 반도체를 확보한 뒤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빅테크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개발한 것에 대한 놀라움은 여전하다. 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이 정부를 넘어 민간 분야에서도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딥시크발 충격’으로 27일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17% 급락했다. 같은 날 또 다른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주가도 10% 이상 하락하는 등 이날 하루 미 증시에서 약 1조 달러(약 1400조 원)가 증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욕 증시가 ‘피바다(bloodbath)’로 변했다고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딥시크의 AI는 (미국 제품보다) 더 빠르고 훨씬 저렴해 보인다”며 “미국 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집중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첨단 기술력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또 오픈AI, MS는 딥시크가 오픈AI의 데이터를 도용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임우선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