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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고

Posted November. 05, 2022 08:58,   

Updated November. 05, 20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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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의 허난설헌은 두 아이를 잃고 나서 ‘곡자(哭子)’라는 시를 썼다. 어린 자식을 잃은 심정이 어찌나 서럽던지 시인은 피눈물로 울음소리 삼킨다고 표현했다. 그 후로부터 몇백 년이 지났다. 지금은 허난설헌의 시대와 같지 않고 이 땅에는 변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모든 게 변했다는 것은 착각이다. 자식 잃은 부모, 형제 잃은 가족, 친구 잃은 사람들에게는 허난설헌의 피 토하는 심정이 멀지 않다.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라고 말할 수 없다. 훌훌 털고 어서 일어나라고 독려할 수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가 없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시는 많고 많지만 지금은 그런 시들을 추천할 수 없다. 사회가 키워내야 할 어린 영혼이 너무 많이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가장 아픈 시를 함께 읽는다. 해설할 수도 없이 가장 아픈 마음을 함께 읽는다. 허난설헌의 자식 잃은 슬픔은 사백 년이 지나도 잦아들지 않았다. 시인의 슬픔은 시 밖으로 철철 넘쳐흐른다. 오늘의 슬픔이 그 슬픔과 다를 리 없고 다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