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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운명 가른 ‘미얀마의 비극’

Posted May. 27, 2021 08:24,   

Updated May. 27, 202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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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는 미얀마의 쿠데타는 한 형제에게도 비극이었다. 오랫동안 민주화투쟁을 해온 동생은 군경에 끌려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왔고, 군대에 몸담으면서 시위대 유혈진압에 나선 형은 쿠데타 이후 승진해 경찰청장이 됐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13년간 옥살이를 했던 소 모 흘라잉(53)이 24일 사망했다고 25일 보도했다. 그는 22일 미얀마 남부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주민 여러 명과 함께 체포됐다. 그의 소재를 군 정보원이 밀고했다고 한다. 체포 당시 그는 군경이 마구 휘두른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틀 뒤인 24일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숨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은 다음 날 양곤의 군 병원에서 관 속에 있는 그의 시신을 확인했다. 소 모 흘라잉의 친구들은 그가 군정에 반대하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해 숨졌다고 보고 있다. 유족으로 아내와 5명의 자녀가 있다.

 소 모 흘라잉은 1988년 미얀마에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이른바 ‘88세대’의 일원이다. 당시 군정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인 전(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 참여했다. 소 모 흘라잉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석방을 요구하다 체포돼 13년간 감옥에 있었다. 석방된 뒤에는 바고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무료 교육, 주민 복지를 위해 활동했다.

 군부 핵심 인사인 탄 흘라잉 중장은 동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경찰이 벌인 시위대 고문과 학살, 체포, 구금 행위의 지휘 라인에 있는 최고 책임자로 평가된다. 미얀마 군부는 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뒤 경찰과 정보를 담당하는 ‘특수지부’를 모두 관할하는 내무부에 차관 직위를 신설했다. 군부는 이 요직에 탄 중장을 발탁하고 경찰청장을 겸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미얀마 제재안을 발표하며 “경찰은 탄 중장의 지휘 아래 시민과 비무장 시위대를 살해하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쿠데타 반대자를 체포 구금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며 탄 중장이 미얀마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조종엽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