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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야구

Posted April. 11, 2020 08:33,   

Updated April. 11, 202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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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콕’ 하던 지난 주말 TV 스포츠 채널을 틀었더니 재방송 일색이었다. ‘다시 보는’, ‘명장면’…. 타이틀은 달라도 모두 철 지난 내용. 예년 같았으면 막 시즌을 개막한 야구, 축구, 골프 생중계 보는 재미가 쏠쏠했을 터.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국내외 스포츠도 올스톱된 지 오래다. “시청률이 거의 0%”라며 한숨짓던 스포츠 PD 후배가 아른거렸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예전 영화 한 편이 떠올라 VOD로 시청했다. ‘그들만의 리그’(1992년)다. 톰 행크스(64)가 1940년대 여자 야구팀 감독으로 등장한다. 두주불사인 거포 출신 사령탑 역할을 위해 14kg을 한 번에 찌웠다. 급격한 체중 변화 후유증으로 당뇨를 앓았던 그는 지난달 연예인 아내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 조치됐다. 최초의 할리우드 스타 감염자가 되면서 은막 밖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다시 안방극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1943∼1954년 열린 미국 여자 프로야구가 배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야구 선수들도 징집 대상이었다. 선수 부족으로 리그가 휘청거리면서 여자 프로야구를 도입해 새 활력소로 삼았다. 영화에서는 팝스타 마돈나가 댄서 출신 날라리 외야수로 눈길을 끈다.

 세계대전의 참화에도 미국에선 프로야구가 지속됐다. 그 배경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야구 중단론이 거세게 일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케니소 M 랜디스는 1942년 1월 ‘야구를 해도 되겠느냐’는 서신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에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회신했다. ‘야구를 계속하는 게 국가를 위해 최선이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야구는 최고의 여가 활동이 될 수 있다….’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린 라이트 레터’다. 랜디스는 대통령의 주문대로 야간경기까지 더 늘려 노동자들이 일과 후 관전하도록 했다. 골수 공화당원 랜디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을 혐오했다. 하지만 야구 앞에 진영은 없었다. 메이저리그가 국민 스포츠로 성장한 데는 전쟁 중에도 지친 삶에 비타민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루스벨트 대통령이 살아서 최근 그런 편지를 받았다면 뭐라 했을까. 바이러스의 공포는 전쟁과 차원이 다르다. 언제 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암담한 현실. 로봇이 야구를 하면 모를까, 선수와 관중의 건강 보장 없이 ‘플레이 볼’을 외칠 수 없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도 기약 없는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생중계까지 되는 팀 자체 청백전 열기는 실전 못지않게 뜨겁다. SNS, 인터넷 등을 통한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에 제한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연간 500억 원 안팎인 야구단 예산 가운데 모기업 지원금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불황으로 돈줄이 되는 계열사가 휘청거린다면 야구단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한시적으로라도 구장 사용료 인하나 시즌 개막 후 입장권 구입에 대한 소득공제 등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도서 구입, 문화공연 등에선 같은 혜택이 이미 주어지고 있다. 야구 선수들도 기부, 고통 분담에 더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생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감독 행크스는 “야구에 눈물은 없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어이없는 실수로 자신에게 혼난 선수가 울먹이자 던진 말이다. 운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으니 훈련이든 뭐든 하라는 의미. 행크스는 확진 판정 때 이 대사를 소환했다. “이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전문가 조언을 따르고, 건강에 신경 쓰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 기억하자. 야구에서 울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야구에 눈물은 없다지만 야구가 눈물을 닦아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