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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문시장의 눈물

Posted December. 02, 2016 08:29,   

Updated December. 02, 2016 08:31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 대구에 관찰사가 상주하는 경상감영이 설치됐다. 대구가 영남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탈바꿈하면서 경제활동도 활발해졌다. 재래시장인 대구장은 당초 대구성(城)의 북문 밖에 있었으나 숙종 때인 1679년 경상감영의 서문 밖으로 옮겨가면서 서문시장이란 이름을 얻었다.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혔다.

 ▷1919년 3·1운동 때 서문시장 상인들이 대거 참여하자 일제는 1922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시장을 옮겼다. 이전 직후 한때 기세가 꺾였던 서문시장은 곧 활기를 되찾았다. 광복 후에는 대구의 직물 및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포목 도소매와 철물 도매 분야에서 전국 최대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6개 지구에 46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섰고 상인은 2만 명을 넘는다. 대선 때마다 대구를 찾는 여야 후보들이 민심을 잡기 위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서문시장은 화재로 종종 어려움을 겪었다. 1952년, 1960년, 1961년, 1967년 등 광복 이후 2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불이 여섯 차례나 났다. 11년 전인 2005년 12월 2지구에서 발생한 큰 화재는 점포 1190여 곳을 태웠다. 그러나 시련이 닥칠 때마다 상인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요즘 서문시장을 찾는 소비자는 평일 4만∼5만 명, 주말 10여만 명에 이른다. 특히 올해 6월 문을 연 상설 야시장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새벽 발생한 대형 화재로 서문시장 4지구 내 670여 개 점포가 잿더미로 변했다. ‘대목’인 연말을 앞두고 평소보다 물건을 많이 들여놓았던 상인들은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유난히 추운 겨울을 맞게 됐다. 일단 실화(失火) 가능성이 높지만 인적이 끊긴 오전 2시경 갑자기 불이 났다는 점에서 방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대구시는 발화 원인을 신속히 규명하는 한편 날벼락을 맞은 상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피해 복구와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권순활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