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반성으로 주변국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한 독일이 해외 파병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같은 패전국인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건 대외 군사 활동 강화가 주변국의 우려를 사는 것과 달리 독일의 움직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세계 각국의 안보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뮌헨 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독일 연방군(Bundeswehr)의 활동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독일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죄를 면피의 방패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대 파견 문제가 나오면 독일은 무조건 노(No)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타국이 수십 년간 제공한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독일이 더 많은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독일에서는 해외 파병에 관한 언급이 여전히 아주 예민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남아 있다. 독일은 2011년 3월 리비아 사태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무력 개입에 동참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고 유엔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기권함으로써 국제외교 무대에서 빈축을 샀다. 그러나 최근 독일은 말리에 파견한 군사교관을 기존 180명에 250명까지 늘리고 중앙아프리카에 파견된 유럽연합(EU)군의 군수품과 병력 수송을 지원하는 등 변화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국제 분쟁에 군사적인 개입보다는 정치적인 접근법에 무게를 둬왔지만 3기 정부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은 군사 개입 의지를 강하게 내보이고 있다.
차기 총리 물망에도 오르는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세계화로 먼 곳의 유혈분쟁이 언제든 유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무관심은 독일 같은 국가에서 선택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 인터뷰에서도 매일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데 우리는 다른 곳만 바라볼 수 없다며 비전투 병력의 외국 파병 확대를 시사했다.
독일 지도자들의 이런 발언에 대해서 주요 언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가우크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독일이 나치와 공산주의(동독)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역할을 하려는 상징적 신호라고 주목했고 오스트리아 매체인 프레세는 독일이 국제평화에 대한 무임승차를 끝내려 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독일은 전투병 파병은 여전히 국내외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피하고 있다. 독일 공영 ARD 방송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1%가 독일군의 외국 파병 확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