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에 로마(Roma)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로마는 경멸적 의미가 담긴 집시 대신 1995년부터 유럽의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명칭이다.
1월 1일부터 EU 회원국 중 최빈국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주민들에게도 EU 국경과 노동시장이 완전 개방된 것이 공포감 확산의 계기였다. 당초 서유럽 부자 나라들은 두 나라의 가난한 이주민들이 대거 흘러들어와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사회복지 재정을 가로챌 것이라 우려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2007년 EU에 가입해 유럽 어느 나라에나 옮겨가고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서유럽 9개국이 국내 노동시장 안정을 이유로 7년간 이주민 수용을 미뤄왔다.
한술 더 떠 독일의 집권 기민당(CDU) 출신의 엘마르 부록 유럽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동유럽 이주민들의 사회복지 혜택을 감시하기 위해 지문날인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도 자국민과 같은 복지 혜택을 보장받는 이주민 억제 방안으로 이주 3개월 안에는 실업수당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두 나라 이주민들은 젊은 하이테크 기술자들이 많았다. 실제로 독일 병원과 은퇴시설에서는 두 나라 출신 의사와 간호사를 구하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기술자들은 유럽 각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독일 디벨트에 따르면 독일로 이주한 두 나라 이민자들의 81.4%가 직업을 갖고 있으며 사회보험에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중 46%는 정규직이고 20%는 고소득층으로 분석됐다.
한편 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유랑 생활을 하는 로마에 대한 인종차별과 협박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시사주간 슈피겔은 7일 올해 1월 1일 EU 국경 완전개방 이후 갑자기 (서유럽이) 분노하는 것은 로마들까지 대거 몰려올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헝가리 집권당은 로마의 출산 제한 정책을 내놓았고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선 로마 반대 시위에 나선 군중이 집시들을 가스실로라는 극단적인 구호를 외쳤다. 이탈리아 제노아의 부시장은 시의회에서 구걸과 범죄를 저지르는 로마는 자연재해와 같다. 쓸모없고 귀찮은 해파리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소수인종으로 불리는 로마는 유럽 각국에 총 12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 190만 명이 루마니아에, 75만 명이 불가리아에 살고 있다. 2011년 EU집행위원회가 8만 명의 로마를 조사한 결과 3분의 1이 실업 상태이며 20%는 의료보험이 없고 90%는 빈곤층 이하 수준으로 살고 있었다.
비비안 레딩 EU법무기본권담당 집행위원은 로마를 후원하는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EU 회원국들이 지난 5년간 로마의 사회 통합을 돕는 예산 265억 유로도 다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EU 통합이 소수자를 배제한다면 나치와 다를 바 없다며 지금이야말로 유럽이 부끄러운 과거와 결별할 때라고 지적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