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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같던 LG구매팀 원가절감 지원 연합군으로 (일)

저승사자 같던 LG구매팀 원가절감 지원 연합군으로 (일)

Posted August. 15, 2011 07:23,   

지난해 1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 LG전자 MC(휴대전화)사업본부 회의실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원가 절감(CRCost Reduction)을 주제로 LG전자와 협력업체 관계자들 사이에 회의가 열린 것.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약칭으로 CR라고 불리는 납품단가 조정은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CR 정도에 따라 협력사의 한 해 수익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원래 한국 대기업의 CR란 구매팀이 먼저 협력사의 장부를 들여다본 뒤 적정 이윤을 산정해 올해는 몇 % 단가 인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과도한 CR를 못 버티고 끝내 무너지는 협력사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달랐다. LG전자 구매팀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합리적인 CR를 서로 모색해보자고 했다. 회의실에 참석한 1차 협력사 테크노힐 실무자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원가절감을 향한 양측의 파트너십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대중소기업 함께 사는 단가 조정

일방적으로 가격을 후려치는 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공정기술을 개발해 CR를 이뤄냈다는 점이 참 신선했습니다.

11일 경기 부천시 테크노힐 본사에서 만난 박익균 대표는 지난 1년간의 CR 프로젝트를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1월 협력사 회의를 마치자마자 휴대전화용 배터리팩 1차 협력사인 테크노힐과 이곳에 배터리칩을 납품하는 2차 협력사 ITM 개발자들을 불러 모았다. 배터리에 과전류가 흐를 때 이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보호회로(PCM)의 생산공정을 잘 바꿔보면 원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애플, 노키아 등과 맞서 싸워야 하는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서 단 1원이라도 원가를 줄이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LG전자 혼자서 모든 걸 다할 순 없었다. PCM에 들어가는 작은 칩을 만드는 ITM부터 이를 납품받아 배터리팩으로 조립하는 테크노힐까지 협력업체 엔지니어들의 협조가 필수였다. 삼자가 모여 몇 달을 고민한 끝에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의 원가절감 방안을 찾아냈다.

PCM에 들어가는 칩 두 개를 하나의 칩으로 합쳐 재료비를 줄이는 한편 회로에 쓰이는 도선(와이어 본딩) 소재를 가격이 비싼 금에서 구리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한 것. 또 구매력이 높은 LG전자가 나서 좀 더 낮은 가격으로 기판(웨이퍼)을 공급하는 거래처를 협력사들과 연결해줬다. 이를 통해 LG전자와 협력사들은 연간 20억 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대기업과 협력사가 피땀을 흘려 거둔 원가절감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절차였다. CR 논의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테크노힐은 개당 740원을 주고 사와야 했던 PCM 값을 710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개당 30원의 원가절감 요인이 발생한 것.

하지만 LG전자는 이를 CR에 모두 반영하지 않고 납품가격을 개당 20원만 내렸다. 테크노힐로선 개당 10원의 단가 마진이 새로 생긴 셈이다. 지난해 테크노힐이 3000만 개의 배터리팩을 LG전자에 납품한 것을 감안하면 3억 원의 추가 이윤이 생긴 것. 마찬가지로 테크노힐도 2차 협력사에 추가 이윤의 절반인 1억5000만 원을 나눠줬다. 박 대표는 LG와 협력사들이 1년간 고생한 원가절감의 과실이 합리적인 CR로 돌아왔다며 이제는 원청업체의 CR를 막연히 두려워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대기업, 구매 협상 지원군으로

가격을 너무 세게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와 거래관계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LG전자 관계자)

귀사가 신경을 쓰는 기업인만큼 합리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소니 관계자)

지난해 테크노힐이 배터리셀을 공급받는 일본 소니 관계자들과 만난 가격 협상장에는 난데없이 LG전자 실무자가 함께 배석했다. 직접 구매 관계에 있지 않은 제3자가 협상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 가격 결정력이 떨어지는 협력사를 대신해 LG전자가 직접 구매협상에 힘을 보탠 것이었다. 박 대표는 소니 제품을 구매하는 LG전자 임직원이 발언을 하면 약발이 먹힐 수밖에 없다며 덕분에 소니 배터리셀을 예상보다 낮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에선 유지보수비도 납품가로 인정

해외에서 유지보수비를 이 정도까지 챙겨주니 더 놀랍고 고마웠습니다.

통신 소프트웨어 업체인 엔텔스는 최근 일본 2위 통신사인 KDDI와 납품 계약을 하면서 유지보수비를 납품가의 20%까지 보장받았다. 유지보수비를 아예 못 받거나 많이 받아야 최대 10%를 인정해주는 다른 국내 기업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게다가 무상 유지보수 기간도 보통 3년을 요구하는 다른 기업보다 훨씬 짧은 1년에 그쳤다. KDDI 측은 일본에선 유지보수 비용도 납품가로 인정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엔텔스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업종의 특성상 유지보수를 해줘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국내에서 무상으로 3년간 유지보수를 해주느라 등골이 휘는 주변 업체들을 보면 KDDI 측에 더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