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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원의 저주

Posted May. 30, 200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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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찬물 끼얹는 젖은 담요. 안드레스 벨라스코 칠레 재무장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통했다. 불이 났을 때 물을 묻혀 덮어 끄는 담요처럼, 축제 때 흥이나 깨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006년 원자재 값이 급등하자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국인 칠레엔 돈벼락이 쏟아졌다. 나라에 공돈이 쌓이자 고교생들은 검은색과 흰색 교복 차림으로 교통비 공짜를 외치며 팽귄 행진에 나섰다. 노동계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벨라스코 장관은 남미의 역사는 잔인하게 끝난 붐으로 가득하다며 돈을 풀지 않았다.

칠레처럼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고 다 잘사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의 복잡한 나라들이 대개 그렇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오일 매장량의 2.7%를 갖고 있지만 끊임없는 빈곤과 부패,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나 광물자원이 집중된 나라에서는 정경유착, 독재, 부패가 더 심하다. 땅만 파면 돈이 쏟아지니 정부가 교육, 인프라 등 미래자원에 투자하지 않는다. 국민은 세금을 내지 않고 정치인은 책임을 지지 않는 민주주의 결핍증이 심해진다. 그러다가 원자재 값이 폭락하면 가난한 사람부터 타격받기 십상이다. 이름 하여 자원의 저주다.

벨라스코 장관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자 비로소 돈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섰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벨라스코 장관의 뚝심이 칠레를 구했다고 전했다. 벨라스코 장관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그 혼자만의 힘은 아니다. 칠레는 1985년 진작 경제사회안정기금을 만들어 구리로 얻은 부()는 어려울 때 또는 후손을 위해 쓰도록 해 놨다. 자원이 있든 없든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나라가 잘살 수도 있고 못살 수도 있다고 미국의 우파 씽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강조한다.

칠레는 인플레를 부추기지 않는 건전한 재정,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경제 개혁으로 평상시 경제를 다져놨다. 헤리티지재단이 지난해 보고서에서 자원의 저주를 탈출하는 비결로 꼽은 것도 경제자유였다. 칠레는 벨라스코 장관을 포함한 중도좌파가 집권하고 있다. 좋은 정책엔 이념이 따로 없다는 사실도 칠레는 보여주고 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