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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못찾으면 묻힌 곳의 흙이라도

Posted February. 11, 200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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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처형이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사실상 가장으로 살림을 책임지며 고생만 했다며 어떻게 해서든 시신이라도 찾는 것이 가족의 도리라면서 안타까워했다.

한국 정부에는 동포에 대한 관심을, 주한 중국대사관에는 국민에 대한 권리 보호를 위해 시신을 찾아달라고 호소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K 씨가 2만 위안(약 4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주고 코리안 드림을 찾아 나선 것은 2006년 6월. 엄마와 남동생, 당시 중학 2학년인 딸 등 3명의 생계와 딸의 대학 등록금도 미리 준비하자는 마음에서였다.

남편과의 불화로 한국 가기 7년 전부터 옌지의 친정에 와서 힘들게 산 것도 한국행을 결심한 한 요인.

K 씨는 한국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한 달에 3000위안(약 60만 원) 정도를 꼬박꼬박 옌지의 집으로 보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안부전화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연락이 끊긴 것은 한국 간 지 6개월이 채 안 된 그해 12월.

돈 벌러 한국에 간 사람 중 소식이 끊겼다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는 얘기가 동포사회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렸던 터라 K 씨 가족은 그 후 2년여 동안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연쇄살인범이 살해했다고 한 피해자 중에 딸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K 씨의 어머니는 졸도했다. 지금은 집과 병원을 오가며 죽으로 겨우 기력을 유지하며 일절 외부인과 접촉을 끊었다.

객지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난 딸에 대한 미안함과 어이없게 희생된 분통함을 삭히지 못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K 씨 유족은 명문고에 다니는 K 씨의 딸에게는 엄마가 살인마에게 무참히 희생됐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다. K 씨의 유일한 희망은 그 딸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딸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되도록 이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김 씨는 이번 가족들의 한국 방문도 엄마 소식도 알아보고 일자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요즘 딸이 너무 오래 연락이 끊긴 게 이상하다고 물어올 때는 알고 묻는 게 아닌지 가족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K 씨의 어머니는 언젠가 손녀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구자룡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