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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학살자 13년만의 단죄

Posted July. 23, 2008 09:31,   

기소 13년 만에 체포=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의 비서실은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카라지치가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돼 세르비아 내 전범재판소로 이송됐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AP통신은 익명의 세르비아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외국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 몇 주 동안 베오그라드 근교에서 잠복한 끝에 카라지치를 붙잡았다고 전했다.

체포 당시 카라지치는 저항하지 않았으며 카라지치의 변호인인 스베토자르 브자시치 씨는 발표와 달리 18일 오전 카라지치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체포됐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카라지치의 체포에 대해 EU 의장국인 프랑스의 대통령실은 세르비아의 EU 가입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AFP통신은 5월 실시된 세르비아 총선에서 민주당(DS) 중심의 친서방 연합이 승리한 점을 상기시키며 카라지치를 체포하지 못한 것이 세르비아의 EU 가입에 최대 장애물이었다고 분석했다.

1945년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의 몬테네그로 산악지대에서 태어난 카라지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로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유고 대통령에게 저항하다 투옥됐던 아버지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그는 사라예보로 이주해 의학을 전공한 뒤 초기엔 정신과 의사 및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가 정치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80년 티토 대통령 사망 이후 유고슬라비아연방이 해체 과정에 들어서면서부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 주도로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힘을 얻자 카라지치는 민족주의 지지자들을 규합해 1989년 세르비아민주당(SDS)를 결성한 뒤 당수로 취임했다.

이후 그는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로 활동하며 학살과 인권유린을 주도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는 1995년 6월 학살 고문 등의 혐의를 적용해 카라지치를 처음 기소했다. 그는 1996년 6월 모든 직위에서 사임한 뒤 잠적했다.

유럽의 오사마 빈라덴=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에서 중재역을 맡았던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카라지치가 체포된 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유럽의 오사마 빈라덴이 잡혔다고 말했다. 카라지치의 도피생활을 소재로 스프링 브레이크 인 보스니아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만큼 그는 신출귀몰하며 체포망을 피해왔다.

그러나 빈라덴처럼 그의 은신생활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일부에서는 몬테네그로 산악지대에 은신하면서 세르비아정교회 인사들의 보호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가 여성 가발을 쓴 채 활동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때는 북한으로 탈출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혐의 및 향후 절차=카라지치의 대표적인 혐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최대 학살로 기록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다. 유엔은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도중 스레브레니차에 안전구역을 설정해 보스니아 내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을 보호했지만 카라지치는 1995년 7월 이곳을 집중 공격해 8000명 이상을 몰살시켰다.

국제사회는 또 보스니아 내전 도중 최대 30만 명이 사망하고 2만 명의 여성이 성폭행 당했으며 180만 명이 집을 잃고 강제 이주된 것에 대해서도 카라지치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ICTY가 기소한 카라지치의 혐의는 무려 15개에 달한다.

앞으로 카라지치는 베오그라드 법원에서의 1차 조사를 받은 뒤 네덜란드 헤이그의 ICTY로 이송돼 재판을 받게 된다. AP통신은 사안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그의 재판에는 적어도 몇 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