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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 경매로

Posted February. 13, 200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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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로 서세요. 한 줄로. 법원 경매 집행을 담당하던 집행관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집행관의 경매 유의사항에 대한 고지()가 끝나자 입찰표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한꺼번에 집행관 앞으로 몰려들었기 때문. 보통 때는 줄을 설 필요도 없었지만 이날은 30분가량 줄을 서서 입찰표를 받아갔다. 설 연휴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3일 서울중앙지법 입찰 법정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법정 안 200여 개의 좌석은 경매가 시작되는 오전 10시 이전에 이미 가득 찼다. 입찰 마감시간인 11시경에는 600여 명이 몰려 법정 밖 복도까지 북새통을 이뤘다. 법무법인 산하 부동산사업부 강은현() 실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평소 200여 명에 불과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경매로 몰리는 사람들=이날 경매에 나온 감정가 6억2000만 원짜리 서울 강남구 청담동 35평형 아파트는 4억9600만 원에 경매가 시작됐지만 61명이나 응찰하는 바람에 결국 감정가를 넘겨 6억3650만 원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 법정에 몰린 사람들 중 상당수는 경매를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이었다. 법정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주부도 눈에 띄었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나온 중년부인도 많았다.

주부 김경란(가명45) 씨는 주변에서 경매 얘기를 하도 많이 해 친구와 함께 한번 나와 본 것이라며 학원에서 수강한 뒤 직접 경매에 참여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경매 절차는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은 오후 2시 반경 끝났다.

7일 경기 성남지방법원 경매에도 사람이 몰렸다. 박민양 씨(42여)는 600명이 넘는 인원이 법정 문을 열기 전부터 모여 들어 법정 안이 출근길 지하철 안 같았다고 말했다.

부동산경매정보 제공업체인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월 경매 참여 연인원은 2005년 1월 3만8134명에 달했다. 이는 작년 1월 2만357명과 비교하면 2배에 육박하는 수준. 같은 기간 월 경매 매물 건수는 3만185건에서 4만6017건으로 52.4% 늘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조짐도 한몫=이처럼 경매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불황으로 경매 매물이 크게 늘어난 데 원인이 있다.

아파트는 작년 1월 6772건이 매물로 나왔지만 올해 1월에는 1만2334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아파트는 거래가 빈번하고 비교적 가치 판별이 용이해 처음 경매를 접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편이다.

여기에다 최근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상승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리 물건을 잡아두려는 세력이 가세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저금리로 인해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것과 법원 경매 절차 등이 간소화된 것도 사람들을 경매로 끌어들이는 원인. 산하의 강 실장은 최근에는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고액 자산가들이 경매컨설팅을 의뢰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로또 심리로 접근은 위험=디지털태인 이영진() 부장은 위험성이 높은 경매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금물이라며 권리 분석은 물론 해당 부동산에 대한 가치 분석이 정확해야 낭패를 피할 수 있다 말했다.

이 부장은 또 부동산시장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경매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가격 상승은 아직 일부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허진석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