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냉혈 여전사의 뜨거운 분노

Posted January. 20, 2005 23:13,   

日本語

제니퍼 가너(33)는 웃지 않는 연기가 제격이다. 아무리 정원 손질과 요리가 취미라고 하지만, 175cm 키에 투박한 턱과 광대뼈, 그리고 웬만한 동양인 손가락 길이의 발가락을 가진 그녀가 로맨틱 코미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2004년)에 나와 귀여운 체할 때는 정말 보기 민망했던 것이다.

그녀가 이번엔 영화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SF 액션 영화 엘렉트라(Elektra)에서 핏빛을 연상시키는 빨간 옷차림에 쌍칼을 휘두르며 거친 남자들을 단박에 무찌르는 여전사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벤 애플렉 주연의 데어데블(2002년)에서 주인공의 연인으로 등장했던 엘렉트라 캐릭터에 돋보기를 들이대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 당시 엘렉트라역도 제니퍼 가너였다. 이 영화에서 엘렉트라의 이미지는 툼 레이더의 섹시 여전사(앤젤리나 졸리)보다는 롱 키스 굿나잇의 살벌한 여자 킬러(지나 데이비스) 쪽에 가깝다.

엘렉트라는 미래를 보는 초능력 키마구레의 달인인 스틱으로부터 각종 무술을 익히지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쫓겨난다. 냉혹한 암살자로 살아가던 엘렉트라는 어느 날 마크와 에비 부녀()를 죽이라는 청탁을 맡는다. 그러나 에비에게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엘렉트라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최강의 암살자 집단 핸드는 부녀를 제거하려 하고, 엘렉트라는 이들 살인마 집단과 결전을 벌인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을 탄생시킨 미국의 만화전문지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를 원작으로 한 영화답게 엘렉트라는 개성적이고 심도 있는 캐릭터를 구축한다. 엘렉트라는 물론이고 암살자 집단의 핵심인물 키리기, 몸에 새긴 동물 문신을 실제 동물로 되살려 내는 능력을 가진 타투, 손끝에 닿는 모든 것을 중독시키는 타이포이드, 총알도 못 뚫는 강철 피부의 소유자 스톤 등 악당들은 모두 어둡고 치명적이며 카리스마가 강하다.

크고 강력한 동작을 강조하는 이 영화가 와, 센데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초반 30분까지다. 특수효과를 남발하지 않고 도끼 칼 활 등 원시적 무기를 강조하면서 엘렉트라는 무겁고 찐득찐득한 화면 이미지를 등장인물의 심리와 캐릭터 위에 포개려 하지만, 이 액션 영화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빈틈을 드러낸다. 바로, 액션 그 자체다.

악당 핵심 키리기의 의상에 커다랗게 쓰인 한자(비어있을 공)가 이미 예고했던 걸까. 영화 중반까지 무시무시한 살생의 기술을 늘어놓으며 으름장을 놓던 악당들은 막상 엘렉트라와의 대결에선 공허할 정도로 단숨에 죽는 것이다. 비등점에 이른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는 정작 불을 댕길 구체적 행위를 제시하는데 실패하는 이 영화는 밤새 시험공부한 뒤 시험장에선 졸아버리는 수험생을 보는 것 같은 허탈감을 관객에게 안긴다. 일본풍 일색인 악당들의 외모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는 상대를 단칼에 끝장내는 이른바 사무라이 액션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로 보인다.

한국계 배우 윌 윤 리(007 어나더데이)가 맡은 키리기는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의 촉촉한 눈빛과 소녀 취향의 헤어스타일은 피할 수 없이 서정적이고 필요 이상 정신적이어서 무지막지한 엘렉트라와 성()은 물론 선악마저 뒤바뀐 듯한 착각을 준다. 제니퍼 가너는 냉혹한 킬러로 손색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는 여전사에겐 은총이 아니라 혹일 뿐이란 사실.

엑스 파일의 TV 시리즈 및 영화를 연출했던 롭 바우만 감독.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