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이는 여당의 움직임이 집요하다. 열린우리당은 지난주 한나라당의 반대로 두 차례나 무산된 국보법 폐지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을 오늘 반드시 실현시킨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 소속 위원장이 의사 진행을 게을리 하면 여당 간사가 사회봉을 잡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단 표결로 상정 여부를 결정하자는 여당 주장에 절차적 하자는 없다. 토론한 뒤 합의가 안 되면 표결로 처리하는 것은 의회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요건만으로 의회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 국민 여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문제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의 7080%는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인권 침해 등의 소지가 있는 독소 조항은 고치거나 없애되 안보의 빗장을 튼튼히 한다는 차원에서 국보법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탈북자가 남북을 들락거리는 최근 상황도 국보법 존치()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해 주고 있다.
한나라당도 개정 협상에는 얼마든지 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번 주 안에는 국보법 대안을 마련해 제시하겠다고 한다. 상당수 여당 의원도 여야 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과 협상다운 협상 한번 해 보지 않은 채 폐지안 상정부터 서두르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국보법뿐만 아니라 다른 쟁점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집권당의 태도에서는 과반의 힘이 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읽힌다. 야당이나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과 타협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빙자한 개혁 독재와 다름없다.
어떤 개혁도 국민의 이해와 동참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집권 측은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국보법 폐지를 개혁의 상징인 듯 밀어붙이고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이 시점에 국보법을 폐지하는 게 현명한 일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