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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내조 범현대가 주춧돌

Posted August. 18, 20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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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인 변중석(사진) 여사가 17일 오전 9시 4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1990년부터 협심증 등으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장기 입원치료를 받아 왔는데, 16일 오전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1921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6년 1월 만 15세의 나이로 당시 6세 연상의 고향 총각이던 정 명예회장과 결혼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등 슬하의 8남 1녀를 키워 내며 오늘날 범()현대가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고인은 생전 자신을 좀처럼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남편과 자녀들은 물론 시동생들의 결혼 등 집안 대소사를 손수 챙겼다.

정 명예회장이 매일 오전 5시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면과 검소, 경영의 요체를 가르쳤다면, 고인은 오전 3시 30분부터 손아래 동서, 며느리들과 함께 아침을 준비하면서 항상 조심하고 겸손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고인은 또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와 아끼던 장독대가 내 재산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근검하고 후덕한 면모를 보여 왔다.

남편이 사준 자동차를 집에 놔두고 도매시장에 나가 채소나 잡화를 산 후 물건을 실은 용달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일이나 집에서는 언제나 통바지 차림이어서 찾아온 손님이 안주인을 따로 찾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고인은 시골 아낙네 같은 넉넉함으로 며느리들을 감싸기도 했다. 전통적인 유교 집안으로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 명예회장이 자가용으로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역정을 내자 손자들 키우는 문제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서는 등 며느리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이런 사연으로 며느리들은 10여 년간 고인의 병실을 돌아가면서 지킬 만큼 시어머니에 대한 공경심이 각별했다고 한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편으로 알려진 정 명예회장도 아내에 대해서만큼은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 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다.

정 명예회장은 또 젊은 시절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불평불만 하나 내색하지 않고 집안을 꾸려 준 내자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고인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현대가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였다.

유족으로는 정몽구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정몽준 국회의원, 정몽윤 현대화재해상보험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과 정경희(정희영 선진해운 회장 부인) 씨 등 5남 1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장례식은 고인의 근검절약 정신을 받들어 간소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조화나 조의금도 사절한다. 영결식은 21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다. 장지는 경기 하남시 창우리 선산.



배극인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