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 소아마비 극복… 박정희 반대 육참총장 석방김중태 대통합부위원장, 6·3사태 주도… 1차 인혁당사건 연루돼 옥고김현장 대통합위원,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사형선고 받아
박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이 공약위원회와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선대위 인선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박 후보는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서 선거 전반의 실무를 지휘할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이날 인선에서는 그동안 박 후보가 직접 영입에 공을 들였던 외부 인사의 면면이 드러났다. 특히 대법관 출신인 김 위원장의 인생 역정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격려라는 상징성도 가진다.
광고 로드중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군사정변 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 하자 군 선배인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이 이에 반대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가 구속됐다. 당시 소장 판사였던 김 위원장은 구속적부심에서 송 전 총장을 석방하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박 후보는 1960년대 학생운동권의 ‘간판스타’로 박정희 정권에 저항했던 재야운동가 김중태 씨를 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 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중에 각종 시위를 주도해 몇 차례나 투옥됐다.
▼ 한광옥은 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맡기로 ▼
특히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해 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장으로 1964년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도했다. 또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서울대 연구모임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를 박 정권이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민비연’ 사건과 1차 인민혁명당 사건에도 연루돼 옥고를 치렀고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대구 출신에 경북고를 졸업한 김 씨가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왜 경상도 출신이 박 대통령에게 반대하느냐”고 호통 치는 김형욱 당시 중정부장에게 대들다가 직접 폭행을 당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로 감형된 후 12년간 옥살이를 했던 김현장 씨도 대통합위원으로 영입됐다. 김 씨는 석방 후에도 통일운동을 하다가 구속돼 다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 씨는 이후 각종 강연과 저술을 통해 “주체사상은 낡은 이론이다” “미국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권 후배들이 반미운동 잘못 계승했다”고 말하는 등 이념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광고 로드중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