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판용〉 정부가 내년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를 본격화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추진하려는 가운데, 북한을 움직일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간 중재에 거리를 두고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중국은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정부에 대만 문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길 요구하고 있고, 러시아는 “어떤 중재 역할도 배제한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적대적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것 외에 북중러 밀착으로 주변국들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부가 한반도 문제 분수령으로 삼은 내년 4월까지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 “中에 페이스메이커 함께 해 달라 요청 검토”
22일 외교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열기 위해서는 북한과 밀착한 중국의 중재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에도 북한 문제에 있어 일정 부분 역할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내년 초 이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정상회담 일정을 알리며 “전략적으로 양국이 어떻게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어떻게든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게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과 제11차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갖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 여건 조성을 위한 중국 측의 역할을 당부했다. 이에 마 부부장은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소식통은 “정상회담 의제 조율 뿐 아니라 중국 측은 일본과 갈등이 첨예한 대만 문제를 놓고 지속적으로 한국이 분명한 입장, 특히 중국 편에 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향후 우리가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을 지에 따라 중국의 한반도 문제 협조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 문제 협조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도 냉담하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2일 공식 성명을 통해 평양과 서울 간 관계에 대해 “어떤 중재 역할도 배제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최근 한러 외교당국간 북핵 협의 사실이 보도된 데 대해 “협의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하며 “러시아 연방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손상을 입히려는 시도”라고까지 표현하는 등 강경하게 반발했다. 이호령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한국과의 접촉에 이례적으로 반응하는 건 그만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재래식 무기 의존도가 높아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북중러 밀착에 올라간 한반도 외교 기본값
중국과 러시아의 미온적인 태도 배경에는 최근 북중러 간 밀착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9월 초 천안문 광장에서 시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열병식을 관람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전략적 동맹을 공개적으로 과시했다. 지난달 발표한 중국 국방백서인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것도 북한을 신경 쓴 대목으로 읽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북한으로부터 추가 파병까지 이끌어내는 등 군사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전략적 자산으로 부각된 중러가 ‘적대적 두 국가’를 천명하는 북한의 뜻을 거슬러 남북 중재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게 외교가의 설명이다.
이런 정세 변화는 한국 정부가 가진 한반도 외교의 ‘기본값’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전까지 북한이 중요한 카드인 만큼 이들의 중재를 이끌어내기 위한 상호 교환 카드를 신중히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